자(字)가 대중(大仲)이고, 호(號)는 수촌(水村)이며, 또 다른 호는 우졸옹(愚拙翁)이다. 시호는 문희(文僖)이고,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640년(인조 18)에 태어나서 1724년(경종 4)에 돌아갔다. 아버지는 관서 관찰사(關西觀察使)를 지낸 의백(義伯)이며, 할아버지는 승지를 지낸 곤(袞)이고, 증조는 사정(寺正)을 지낸 영로(榮老)다. 어머니는 관찰사(觀察使) 김상(金尙)의 따님이다.
1687년(숙종 13)에 형조 정랑, 이듬해 호조의 정랑이 되었고, 1689년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고 스승 송시열이 귀양을 가게 되자 사직했다. 뒤에 송시열이 사사(賜死)되자 여러 문인들과 함께 소를 올려 스승의 억울함을 벗기려 애썼다. 이 뒤로 6년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향촌에서 지내다가 1694년에 의금부 도사, 군자감 주부를 거쳐 단양 군수로 나갔다.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올랐다가 우참찬(右參贊)으로 옮겨졌는데, 나이를 핑계로 사퇴하려 했으나 윤허되지 않았고 오히려 좌참찬(左參贊)에 임명되었다. 1721년 겨울에 건저(建儲)에 얽힌 사건으로 노론 대신들이 모두 귀양을 가면서 그도 삭출되었고, 이후 김천(金川)으로 귀양을 갔다가 그곳에서 85세를 일기로 죽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신원(伸)되었다.
1957년 경기 남양주에서 출생했다. 국민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민대 강사, 성균관대 강사 등을 거쳐, 현재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교수로 있다. 중국 무한대학 방문학자, 영국 셰필드 대학 방문교수 등을 지냈다. 논문으로는 박사학위 논문 「서정한시의 의미 표출 양상에 관한 연구」 외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시화총림(詩話叢林)』상·하(공역, 까치, 1993), 『조선부(朝鮮賦)』(까치, 1994),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1∼10(공역, 소명출판, 2003), 『대동운부군옥』 11∼20(공역, 민속원, 2007) 등이 있다. 저서로는 『한시(漢詩)와 사계(四季)의 화목(花木)』(교학사, 1997), 『남명의 인간관계』(경인문화사, 199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