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대중문화, 마케팅, 리더십, 의사소통, 신화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연구하며 글을 쓰고 있다. YTN, CBS, BBS를 비롯한 여러 방송 매체와 연구개발인력교육원 등 다양한 단체에서 강의해왔다. 삼성 SDS, 우리은행 등 기업 사보와 일간지에도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베스트셀러인 《대화의 연금술》을 비롯해 《통하는 대화법》, 《리더십 불변의 법칙》, 《해체냐 해탈이냐》,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법칙》, 《두 개의 길 하나의 생각》, 《바루나-포용의 신화를 찾아서》, 《강화도 미래신화의 원형》과 중국에 수출된 《행복한 수면법》 등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그녀를 가슴에 품은 지 정확히 9년 되던 오월의 첫날, 아르노 강 베키오 다리에서 그녀와 마주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베키오 다리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로맨틱한 기분을 자아내는 명소가 되지요. 오죽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도 아르노 강의 다리를 전부 폭파하라 명령하면서 ‘이 다리만큼은 손대지 말라’고 했을까요? 이 다리 주변엔 유명한 금세공가인 벤베누토 첼리니의 동상이 서 있고 그 동상의 울타리에는 자물쇠가 수없이 채워져 있습니다. 이 지금도 연인들은 이 울타리에 자물쇠를 채우고 베키오 다리를 함께 건너면 한번 채운 자물쇠가 영원하듯 자신들의 사랑도 영원하리라 믿습니다. 이 베키오 다리에서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재회하는 장면은 영국 화가 헨리 홀리데이의 그림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 하얀 드레스를 입은 베아트리체는 두 소녀를 사이에 두고 베키오 다리를 지나다 우연히 단테를 보고 의례적으로 인사를 건네는군요. 단테는 그 순간 ‘은총의 모든 극치’를 맛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는 감미로운 음악에 취한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가는데 말이죠. 그리고 쓸쓸히 방에서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한 손에 내 불타는 심장을 쥐고 조심조심 먹었다. 그리고 사랑은 울면서 떠나갔다. - 단테《새로운 삶》3장 중에서 「베아트리체와 단테」 ---pp.16-18
예이츠는 한 여자를 거의 30년간 일방적으로 애모하며 수많은 부침을 겪었습니다. 구애가 애달프게 끝나도 그녀에 대한 연정을 평생 버리지 못했죠. 오히려 예민한 감수성이 더욱 살아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동경, 수용과 부정, 애석함과 초탈이 함축적으로 교차하는 작품을 토해내게 됩니다. 만년에 이르러 그의 시는 생의 단절과 소멸을 극복하고 자아를 완성하는 경지에 이르죠. 이처럼 예이츠에게 모드 곤은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해주는 돋보기자 현재를 해석하는 프리즘이며 미래를 어느 각도에서 조망할지를 정하는 망원경이었습니다. 모드 곤의 거절이 예이츠를 불세출의 시인으로 만든 셈이랄까요? 예이츠는 생애 마지막 수년간을 아일랜드 해안의 고성 밸리캐슬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자기 묘비명을 미리 지어놓았습니다. 왜 이렇게밖에 지을 수 없었는지 그 안타까운 사랑을 떠올리며 그의 묘비명을 한참 들여다보게 됩니다.
싸늘한 시선을 던져라 Cast a cold eye 삶과 죽음에. On life, On death 그리고 말 탄 자여, 그냥 지나가라. Horseman, pass by 「모드 곤과 예이츠」 ---p.230
“사람을 사랑한다며 가르치려고 들지 마세요. 억지로 도야시키려 할수록 반감만 생길 뿐입니다. 그 사람의 본래 모습 그대로만 수용하세요.”
오호라, 멋진 말이죠? 이 말을 볼테르에게 던진 후 카사노바는 다시는 볼테르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카사노바의 명언을 하나 더 들어볼까요? 그는 자신의 인생관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인생이라는 진수성찬이 그 앞에 차려져 있다. 그 식탁은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다. 그러나 죄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은 식탁 위의 산해진미를 식별할 수도 없거니와 그 깊은 맛을 음미할 기회조차 스스로 포기한다. 인생의 식탁을 즐겁게 바라보는 눈 그 자체가 관능적 갈망이다.
그래서 그는 관능적인 여자를 선호했습니다. 자신이 사랑 예찬론자이듯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마시는 여인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여인과 같이 베개를 베고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대화 나누기를 즐겼더랬죠. 그렇다고 여인에게만 구원이 있는 것처럼 신격화한 것은 아닙니다. 여성과 나누는 관능에 형이상학적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여성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나 어디까지나 관능의 자유 안에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