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면 또 어떤가? 물길을 거스르고 갈 때는 배가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혹 뒤집히지 않을까 덜컹 겁이 나곤 한다. 배 안의 풍경을 보면, 멀미 하는 사람은 ‘왝왝’거리기 일쑤고, 누워서 자는 사람, 고스톱 치는 사람, 장기 두는 사람, 그저 파도나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 앉아서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처음 여객선을 타 봤을 것인데 조금도 기억나지 않은 것을 보면, 업혀가다가 잠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때야 당연히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을 것이다. 엄마라고 불렀던 기억, 그 기억이 적어 아쉽다. 어머니를 엄마라고 크게 한 번 불러 본다.
“엄마????” ---「엄마」중에서
쇠똥구리는 소똥을 먹고 산다. 토끼는 자기 똥을 먹는다. 코끼리 새끼는 어미 똥을 먹는다. 소똥은 집 짓는 데 쓰고 땔감으로도 쓴다.
우리는 똥이 더럽다 하면서도 자주 인용한다.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똥짐. 똥장군. 똥 먹던 강아지는 안 들키고 겨 먹던 강아지만 들킨다. 똥 싼 놈은 달아나고, 방귀뀐 놈만 잡힌다. 이렇듯 우리는 똥 속에서 해어나지 못한다.
이놈은 이름도 참 많다. 뒷간, 통시간, 똥간, 북수간, 똥통, 정방, 작은집, 해우소 등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천하일색 미인도, 뱃속에는 똥이 차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똥한테 자유로울 수 없다. 싫어도 똥 하고 같이 어울릴 수밖에. ---「똥을 들쳐보다」중에서
그때부터 나는 뱀 전문가가 된 듯 뱀하고 친해졌다. 그놈을 잡으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하면서 까불고 만용을 부렸다. 따지고 보면 뱀은 죽은 것은 안 먹고 이슬만 먹고 사니 사실은 깨끗한 동물이다. 독사나 살무사는 맹독이 있어서 물리면 큰일 나지만 화사는 독이 없어 물지도 않고 또 물려 봤자 물리나 마나다.
그 소는 거짓말 같이 포동포동 살이 쪄 갔다. 천하장사가 온다고 하여도 소 입 하나 벌리지 못할 터인데 초등학생이 소 입을 자유자재로 벌리는 원리를 터득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소만 보면 기분이 좋고 우리 소 남의 소 가리지 않고 풀 잘 먹고 쟁기질 잘하고 싸움 잘하는 소를 좋아했다. ---「소에게 뱀 먹이기」중에서
이난영은 김해송 작곡가와 결혼하여 많은 자녀들을 두었는데, 사촌까지 영입하여 김씨시스터즈, 김보이즈, 두 팀을 만들었다. 그 팀들이 유명한 가수대열에 올라, 급기야 미국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으니, 유전자가 따로 있나 싶었다.
김해송 작곡가가 납북되는 바람에 이난영은 말년에 남인수와 재혼하였다.
지금도 목포 유달산에 가면,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그녀의 사촌오빠인 이봉용이 작곡 한 '목포는 항구다'를 열아홉 이난영의 목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중에서
나는 깨끗한 옷 한 번 못 입고 먼지투성이 기름밥을 먹고 있어도, 버스 타는 손님들은 상쾌한 기분으로 출퇴근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버스가 자꾸 늘어나 좋아했는데 그렇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30여 대의 버스가 60대가 되고 보니 천호동 종점에서 길동과 암사동으로 양쪽으로 갈라졌다. 갑자기 종점이 두 개가 되고 말았다. 나는 길동으로 가고, 암사동은 딴 사람이 자리 잡았다. 할 수 없이 10여 년 동안이나 정들었던 기름때를 시원섭섭하게 벗어놓고 말았다.
지난 세월 펑크 난 타이어를 때우는 일은 곧 나의 삶을 때우는 일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땀의 가치를 배웠다. 밑바닥에서 뒹굴어 봐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고, 고생한 만큼 차츰 성숙되었다.
---「펑크 난 삶을 때우던 시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