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은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1988년부터 1992년까지의 졸업 앨범을 찾아서 교장실로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파마머리에 검정색 치마를 입은, 삼십 대로 보이는 여자가 다섯 권의 졸업 앨범을 들고 교장실로 들어왔다. 군청색과 보라색 벨벳 표지의 상단에는 금박으로 졸업 연도가, 하단에는 꽃 모양이 인쇄돼 있었다. 확실하게 비교하려고 나는 가방에서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경)’을 꺼냈다. 그러자 나를 빤히 쳐다보던 교장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런 사진이 다 남아 있었네요.” --- p.51
짧게 네 번, 길게 세 번, 짧고 길고 길고 짧게, 짧게 한 번.
봤을까?
나는 생각했다.
한 번 더.
짧게 네 번, 길게 세 번, 짧고 길고 길고 짧게, 짧게 한 번.
이번에는 봤을까?
“이게 무슨 뜻이지?”
내가 오빠에게 물었다.
“H. O. P. E.”
“희망이네.”
그날 저녁, 우리의 희망은 아빠가 그 높은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물론 살아서. 하지만 그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 p.176
그렇다면 우리에게 양관은 밤의 집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청 옆길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우리 학교인 진남 여고 뒷산의 열녀각과 왼쪽 언덕 위의 양관이 비슷한 높이로 보였는데, 오전에는 잘 모르다가 이따금 하교하는 길에 뒤를 돌아보면 두 건물의 그림자가 학교에 드리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해가 두 건물의 뒤편으로 넘어가는 오후 네시 이후 학교는 그늘의 공간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학교가 그 정도였으니까 양관은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금도 양관을 생각할 때면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다. 십 대 시절 우리는 양관을 떠올릴 때마다 오염, 불길, 타락 같은 단어들을 떠올렸다. 그건 아마도 식민지 말기 가족이 모두 떠난 양관을 혼자서 지켰다던 백인 소녀 앨리스의 저주가 그 집에 드리워져 있다던 소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1981년부터 시작된 진남조선공업 이선호 회장 일가의 몰락은 그 소문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p.252
진남호텔로 가면서 나는 언젠가 고해성사를 하러 보좌신부님을 찾아갔던 일을 생각했다. 학생 미사에서 보좌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진남조선소에서 네 명의 노동자가 불에 타 죽고, 한 명의 노동자가 타워크레인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을 거론하면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학생들에게 부탁했다. 미사가 끝난 뒤, 나는 사제관으로 보좌신부님을 찾아가 하느님은 자살한 영혼도 구원하느냐고 물었다. 신부님은 아무런 대답 없이 창밖만을 바라봤다. 창밖에는 오동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꼭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새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신부님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한 번 쥐었다가 풀더니 자살한 사람들은 죽어서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존재니까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만 한다고 말했다. 신부님의 목소리는 떨렸다. 사제관의 공기는 무더웠고, 또 무거웠다. 창문을 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부님은 그냥 닫아둔 채로 앉아 있었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닦을 마음도 먹지 못했다. --- p.302
가끔,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나의 말들이 심연을 건너 당신에게 가닿는 경우가 있다. 소설가는 그런 식으로 신비를 체험한다. 마찬가지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신비를 체험한다.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을 때, 어둠 속에서 포옹할 때, 두 개의 빛이 만나 하나의 빛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듯이.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심연을 건너가는 것, 우리가 두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는 것, 혹은 당신이 내 소설을 읽는 것, 심연 속으로 떨어진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