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5년 전 내가 파리에서 일할 때, 한 동료가 수상쩍은 취향의 스웨터를 입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성이 전면에 나온 신문을 보여주었다. “녹색 운동을 하는 사람이래.” 그는 괴짜처럼 보이는 그 사람을 조롱하면서 비웃었다. 당시 내게도 ‘녹색’ 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별스러워 보였고, ‘기후 변화’라는 말도 그랬다. 지금 그 개념은 많은 공공 정책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고, 개인의 생활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비록 시기는 수십 년 차이가 나지만, 기후 변화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하기 위해 책 제목을 《마인드 체인지》Mind Change(마음 변화)라고 지었다. 둘 다 세계적이고 논란을 일으키고 유례가 없으며 다면적이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행동을 요구하는 반면, 마음 변화는 21세기에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시킬 가장 흥미진진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유형의 세계에서 살고 싶은지,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실제로 어떤 유형의 인간이 되고 싶은지를 논의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때, 그렇게 될 것이다. ---「서문」중에서
좀 기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물질적인 뇌에 실제 변화가 일어나는 일도 가능하다. 생각이 어떻게 물질적인 뇌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가장 많이 인용된 것은 1995년에 알바로 파스콸리온 연구진이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성인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연구진은 자원자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대조군은 5일 동안 실험 환경에 노출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연습이라는 학습 요소는 접하지 못했다. 두 번째 집단은 손가락 다섯 개로 피아노를 치는 법을 배웠고, 5일이 지나서 뇌 영상을 찍은 결과 경이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세 번째 집단에는 더욱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집단에게 단지 피아노를 치는 상상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뇌 영상을 찍어보니 실제로 연습을 한 집단과 거의 동일한 변화가 나타났다! --- pp.96-97
마음이 개인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뉴런 연결을 통해 이루어지는 뇌의 개인화라면, 섬세하게 개인화한 연결들에 온전히 접근할 수 없게 될 때 진정으로 마음의 상실이 일어날 것이다. 약물과 알코올은 뉴런 연결 사이의 화학적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한 유흥가나 속도감 넘치는 스포츠의 속사포 같은 자극들은 주로 ‘감각적인’ 것이므로 복잡한 인지적 토대가 필요하지 않다. 때로 원초적인 감각이 더 우세할수록, 쾌락도 더 커지는 듯하다. ‘황홀감’ecstasy이라는 단어는 원래 그리스어에서 자신의 ‘바깥에 서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 다양한 것들을 통해 이 감정적이고 무분별한 상태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나는 종종 흥미를 느낀다. 그 공통점이란 바로 ‘자의식의 부재’다. 유입되는 감각의 수동적인 수용자가 되기 위해 자아 감각을 버리는 것, 즉 ‘포기하는’ 것이다. 당신은 의식을 지닌 채 마음을 잃을, 혹은 정신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마음’과 ‘의식’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 pp.120-121
현실 세계에서와 달리, 페이스북 정체성은 명시적이기보다는 암묵적이다. 즉 이용자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문제와 실망에 대처하는 전략과 태도, 정상적인 생활에 수반되는 온갖 사항들을 시시콜콜 말하는 대신에 좋은 것과 싫은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말하기보다는 보여준다. 아무 설명 없이 초콜릿 케이크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친구들’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 추론하라고 맡기는 것이다. 현실 생활의 관계에서 그 케이크는 훨씬 더 깊고 사적인 이야기와 연결되는 물질적 고리일 수 있다.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 간 여행이나 새로운 요리법을 터득하여 우쭐해진 기분 같은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의 관념 연합 -특정한 공통의 경험이나 관심사- 이 없다면, 케이크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 p.153
매체 폭력을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것과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직접 하는 것 사이에 가장 명백히 드러나는 중요한 차이점은 상호작용성이다. 많은 비디오 게임에서 게이머는 게임 속으로 ‘들어가며’, 그 경험을 강화하는 제어 장치를 손에 쥐고 움직이므로 공격적인 감정이 더욱 솟구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은 게이머가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할 때에만 현실 세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누군가가 슈퍼마리오 게임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거북 등딱지가 적을 쓰러뜨리고 깃털이 날게 해준다고 믿기 시작할 것이라고 걱정할까? (…) 비디오 게임 속 폭력은 현실 세계에서 접한 공격성과 폭력을 통해 이미 확립된 마음의 스키마를 자극한다. 우리의 마음속에 거북 등딱지, 깃털, 비행 능력에 관한 스키마는 별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 반면, 낯선 자를 잠재적인 공격자로 인식하고 적의와 불신을 갖는 태도에 관한 스키마는 확고히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이 주제를 살펴보는 연구자들은 슈퍼마리오 게임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 형식의 게임에서 폭력성이 진정으로 어느 수준인지 의문을 품어 왔다. 연구들은 대부분 참수처럼 잔인하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묘사하는 최근 게임들의 고도로 세밀하고 현실적인 인간 대 인간의 폭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진정으로 중요한 점은 이런 유형의 현실적인 폭력이 그 뒤의 공격성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는 것이다. --- pp.234-235
더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들보다 단순한 질문과 복잡한 질문 양쪽에서 더 짧은 시간에 답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찾아낸 답이 옳은지 확신이 덜 선다고 답했다. 그 점은 그들이 연령이 더 높은 집단보다 찾아본 페이지 수가 더 적고, 방문한 도메인 수와 검색도 더 적게 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이 단순한 질문에서든 복잡한 질문에서든 찾아낸 답들이 ‘잘라 붙이기’를 한 것에 훨씬 가깝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또 더 젊은 세대는 작업 기억이 안 좋고, 다중 작업을 훨씬 많이 함에도 그 능력은 더 떨어진다는 것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무턱대고 마우스를 눌러 구글에서 먼저 답을 찾으려는 성향과 함께 미묘한 차이나 불확실한 사항을 붙들고 고심하려는 의지가 점점 약해지거나 정보를 평가할 능력이 부족해짐으로써 젊은 세대는 전체를 보기 위해 깊게 살펴보는 일을 내치고 그저 ‘정보’ 시대라는 허울에만 집착하고 있다.”
--- pp.263-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