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뉴욕에 와보니 나는 일상회화는커녕 스타벅스에서 커피 하나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하는 레벨의 영어를 하고 있었고, 미국 소재의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오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기가 어렵다는 것, 그리고 막상 취업이 된다 해도 취업 비자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학원에 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뉴욕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물가가 너무 비싸고 돈이 많이 드는 곳이었다. 시간만 많고 돈이 없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보다 먼저 뉴욕에 와서 자리를 잡고 살던 친구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친구는 5불만 내면 되는 요가원이 있으니 한번 가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요가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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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상에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과시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집중하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려는 열정. 요가복은커녕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튀어나올 대로 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지만, 괜찮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매트를 다닥다닥 붙여서 앞뒤, 양옆 사람과 계속 부딪히면서도 누구 하나 싫은 기색 보이지 않고, 서로의 움직임을 타협해가며 그 안에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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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람 요가의 초반부는 한 다리로 서서 밸런스를 잡는 자세들이 연이어 나오는데 나는 그때마다 계속 넘어지거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러다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꾀가 생기기 시작해 한 발로 서는 자세를 할 때는 쭈그려 앉아 외발로 버틸 발의 발가락을 오리발처럼 손가락으로 쭉쭉 벌려서 바닥에 고정시켜놓고 그대로 일어나 밸런스를 잡으려고 노력하곤 했다.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비슷하게라도 따라 해보려고 노력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니 점점 요가 자세들에 익숙해지면서 가끔 칭찬도 듣기 시작하고(“굿, 상아!”),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는지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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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마음이 조급해지던 2분 샤워는 오히려 내게 느긋함을 선물해줬다. 그리고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한 청결함의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땀 좀 흘려도 괜찮고, 가방 좀 바닥에 내려놔도 괜찮고, 맨바닥에 앉아도 괜찮다. 멋 좀 부리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아지는 것이 많아지면서 왜 그동안 그것들이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아니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당연히 괜찮지 않다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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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매일 매 순간 하는 것, 하지 않으면 생명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것, 무의식적이기도 하면서 의식적이기도 한 것, 놀라면 가빠지고 편안하면 차분해지는 것, 모든 감정에 언제나 제일 먼저 반응하는 것, 집중과 명상 그리고 무아로의 여행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 그리고 삶이 다했을 때 멈추는 것, 그것이 프라나야마, 즉 호흡이다. 파탄잘리의 요가 8단계에서 프라나야마는 아사나 뒤에 나온다. 아사나 뒤에 올 정도로 어렵고 중요한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알게 된 프라나야마는 아주 기초적인 호흡 방법이었지만 5, 6년이 지난 뒤 나의 프라나야마 수련은 다라나(고도의 집중), 디아나(명상), 그리고 무아(無我)로 안내하는 수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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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쿤달리니 에너지를 엑스터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자신감이 넘치고, 온갖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 때문인데, 이로 인한 중독성 또한 강하다. 내가 그 에너지를 만났을 때 나에게는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1년이란 시간이 걸려서야 방황을 멈추고 겨우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할지 방법을 찾게 되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요기 바잔이 살아생전에 말씀하셨다. “쿤달리니 요가는 스승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절대 깨달을 수 없다.” 재러드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의심과 방어벽을 완전히 허물고 내 안에 잠재된 무한 에너지를 깨우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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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새벽이지 한겨울이라 새벽 5시 반은 아직 한밤중처럼 캄캄한데 불은 전혀 켜져 있지 않았다. 다만 열풍기가 만들어내는 빨간 빛 덕분에 저 멀리 왠지 한주훈 선생님일 것으로 예상되는, 차를 마시고 있는 남자의 형상과 요가 매트를 깔지 않은 푹신한 바닥에 서너 줄로 옆으로 길게 앉은 사람들의 형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 가 앉아 있으니 잠시 후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부장가아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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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는 분명 나의 요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제 그가 했던 말을 나의 학생들에게,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있다. 뭔가 해보기도 전에 안 될 거라며 포기부터 하거나 또는 조금 해보고 안 된다며 단념하는 이들에게 나는 오늘도 얘기한다. 당신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You never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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