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그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불가능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뇌리에 퍼뜩 떠올랐으나 두 눈에 들이박히는 장면에는 변함이 없었다.
갑옷과 무기를 갖춘 군대가 중앙궁을 포위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근위병의 차림이었으나 궁정 근위병이 저렇게 많은 인원으로 중앙궁에 모여들 리가 만무했다. 솔레다토르는 목 뒤가 섬뜩해지는 것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옆에 서 있던 공작의 멱살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그가 주름진 얼굴 바싹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를 토해낸다.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이냐고 물으셔도, 소신의 사병이 아닙니다. 저것은 황태후의, 변경백들의 변경군이지요.”
“황태후라고?!”
“예, 폐하.”
멱살을 잔뜩 끌어당겨진 상태이건만 공작은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
“황태후가 조용히 군사를 끌어모아 궁정에 잠입시킨 것이지요. 소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네놈, 일부러 경계를 늦추고 황태후가 반역을 도모하도록 눈을 감은 것인가!”
“방심한 면은 없잖아 있습니다. 소신도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으니 실수를 할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뻔뻔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황태후가 얌전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쯤은 아직 미숙한 이카르조차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감시를 게을리하여서는 안 되었는데, 황위 양위에 신경을 쓰느라 황태후에 대한 일을 카얄룬 공작에게 모두 맡겨놓은 것이 문제였다. 뒷골이 아플 정도로 노기가 치솟았으나 솔레다토르는 도리어 잡고 있던 멱살을 풀어 놓아주었다. 지금 공작을 해쳐서는 안 된다.
“……원하는 게 뭐냐.”
눈앞의 교활한 노인이 해결책 없이 일을 저질렀을 리는 없었다. 솔레다토르의 말에 공작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네놈!”
공작 대신 창틀을 붙잡은 손아귀 아래서 으적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황태후가 이카르를, 황제를 살해하길 바라는 것인가!”
“어찌 되든 상관없습니다.”
카얄룬 공작의 목소리는 차갑고도 담담했다.
“수호룡의 가호를 받지 못하는 황제 따위,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니 황제의 목숨을 살리길 원하신다면, 솔레다토르께서 몸소 나서주시지요.”
방관자의 태도를 취하는 그의 대답에 솔레다토르는 이를 으득 갈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궁의 정문이 완전히 뚫리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뛰어간다면 이카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창밖으로 몸을 날리려는 바로 그때, 카얄룬 공작의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참, 푸른 라브르궁에도 군사가 가 있습니다. 선황제를 사로잡기 위함이죠.”
“…….”
푸른 라브르궁 또한 공격당하고 있다. 그 말이 품은 의도를 눈치챈 솔레다토르의 입가가 사납게 비틀어졌다. 캬알룬 공작이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시간을 끈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단 말인가. 인간의 몸으로는 양쪽 모두를 제시간에 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드래곤으로 화한다 하여도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둘 중 하나만 구해야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심장이 조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 수호룡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황제를 구해야 한다. 황가를 지키고 보호해야만 한다. 자신의 품안에 들어온 소녀의 목숨이 벼랑 끝에 매달렸다 하더라도 황가를 우선시해야만 하는 것이 수호룡이다. 둘 모두를 지켜주겠노라 약조했지만, 단 하나만 손 내밀어야 한다면 황가였다.
괴롭게 상체를 웅크리는 솔레다토르의 모습에 카얄룬 공작이 두 팔을 넓게 벌리며 외쳤다.
“자아, 솔레다토르시여! 어서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십시오! 어쩌면 둘 모두를 구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솔레다토르는 마치 공작의 말에 따르듯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들릴 리 없는 쇠사슬이 철그렁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린다.
황제를 구해야만 한다. 황제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생쥐가 군병의 창칼 아래 차가운 시체가 된다 해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발길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황제의 안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결코 소중한 소녀의 곁으로 향할 수 없다. 이카르가 소중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갈등조차 할 수 없이 끌려가야만 하는 스스로의 처지가 오랜 상처를 후벼 파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낡고 낡은,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억압.
아아.
짧은 비명과 같은 한탄 속에서, 흑발 사내의 모습이 무너지듯 사라져간다. 그리고 탑 밖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흑적색의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은 평소와 달리 시뻘겋게 물든 눈으로 머리를 치들었다. 이어 날개를 펼치고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하하하하!”
카얄룬 공작은 마치 40년은 젊어진 듯한 기세로 웃음을 터뜨렸다. 창밖으로 떨어질 듯이 상체를 내밀어 중앙궁을 향해 날아가는 수호룡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보아라! 저것이 바로 제국의 수호룡이다!”
듣는 사람 하나 없건만 그는 미친 사람처럼 흥분에 들떠 소리를 질렀다.
“수호룡이 돌아왔다! 진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떠나지 못하리라. 그렇게 만들고 말 것이다. 늙은 공작은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연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