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3일 런던 북동쪽의 한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 upon Avon)에서 태어나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을의 성삼위일체교회(Holy Trinity Church)에 안장되었다.
1587년경 홀로 런던에 상경한 20대 초반의 셰익스피어는 극단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 아마 처음에는 극장의 매표소에서 일하거나 관객들이 타고 온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극단의 배우로 일하면서 극본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기간의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러나 1592년경 그가 20대 후반에 이르자 셰익스피어란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점차 런던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극작가로 알려진다. 극작 경력의 초기에는 젊음의 활기가 넘치는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등의 낭만적인 희극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점차 나이가 들고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되면서 <햄릿>, <리어 왕>등의 비극을 주로 쓰게 된다. 총 37편의 극작품과 2편의 장시, 154편의 소네트 등을 남긴 셰익스피어는 16, 17세기 영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오늘날 전 세계에서 대문호로서 추앙받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게 된 데에는, 그가 운 좋게도 풍부한 문학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도 한몫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던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문예 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제반 양상들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성숙한 문학적 또는 문화적 분위기,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문학 작품 이상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참고서 역할까지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탁월함을 증명해 주는 또 다른 점은 그의 문학적, 연극적 상상력과 감칠맛 나는 표현력을 들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속한 극장의 구조를 십분 활용하면서 구조상의 제약을 뛰어넘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관객과 독자를 매혹한다. 같은 이야기 소재라도 셰익스피어의 손에 들어가면 모든 이의 정서에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시공을 초월해서 거의 모든 삶의 영역을 탐구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 심지어 현대의 경영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도 셰익스피어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또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처럼 셰익스피어는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숱한 명대사를 남겼다. 작품 속 표현 한마디 한마디가 관객들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하고, 교묘하고 신비로운 표현은 그 속에 인생의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오늘날 영어의 풍부한 표현력은 셰익스피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의 작품이 가져다주는 문학적 향취에 취해 감탄하게 된다.
김용태는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나서, 1994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에서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의 로마극과 제임스 1세의 통치 양상을 연결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명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유물론적 관점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르네상스기 극작가들이 자신들의 극작품에서 당대 사회 문화 현상들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셰익스피어 영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4년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받고, 저서로 우리말 주석본 <한여름 밤의 꿈>, 공동 집필서인 ≪셰익스피어 해설서 Ⅱ≫,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