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 데이브 팩커드와 빌 휴렛은 여전히 그녀의 영웅이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가 끝넌 후, 회상에 잠긴 그녀는 팩커드가 1950년대에 행했던 고전적인 경영원칙에 대해 생각했다(몇 가지는 그녀가 문제로 생각하는 사항들이기도 했다). “그의 원칙은 이 회사를 이끌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HP 컴팩 합병에 대한 전투가 수그러든 뒤, 그녀는 창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삼갔다. 마치 먼지방지 덮개를 씌워 그들을 벽난로 위에 고이 모셔둔 것 같았다. “테크놀러지는 엔지니어가 벌이는 게임 이상의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터득해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지요. 업계를 이끄는 테크놀러지 기업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실제로 테크놀러지에만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오리나는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들도 HP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이해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녀는 이제 모든 기업들이 표본으로 삼는 강력한 실용주의 회사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을 주목하고 있다.
--- 제12장 최고의 리더십
칼리 피오리나는 휴렛팩커드에 들어오면서 세계의 야심 있는 여성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불가사의하게도 중년의 남성 CEO들의 역할 모델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지휘권을 지키기 위한 전투가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보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어떠한 지도자라도 환호가 멈췄을 때 부딪칠 수 있는 예고였다. 언젠가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Jeff Bezos)는 전화를 걸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포옹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전화 포옹입니다!”
--- 제9장 피오리나의 전쟁
피오리나가 휴렛팩커드에 취임하기 전, 최고의 정신적 스승 중 한 명인 루슨트의 회장 헨리 샤크트가 이런 충고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이사회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네. 세부적인 것도 그냥 넘기면 안 되지. 저녁모임을 주최할 때면 서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앉을 수 있도록 자리 배정에 신경 쓰게.” 피오리나는 임기 중 첫번째로 맞는 1999년의 연감용 사진 촬영을 하는 자리에서 그 충고를 떠올렸다. 검은 정장을 입고 한 줄로 서는 것보다 좀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남자 이사들에게는 노타이 차림의 셔츠를, 여자에게는 바지를 입혀 세 명씩 짝을 짓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짝으로는 딕 핵본과 월터 휴렛을 고르고 그 가운데에 섰다. 핵본은 차기 회장이니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휴렛을 옆에 세운 것은 이유가 있어서였다. 신임 CEO는 자신이 진짜 휴렛 옆에 서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 제5장 이사회 속으로
피오리나는 자기 주위에서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회생활 초기부터 휴렛팩커드를 동경했다. 루슨트를 독립시킬 때는, 1990년대 중반에 훌륭한 성과를 거둔 HP를 벤치마킹하고 그에 필적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휴렛팩커드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방향을 잃어가고 있으며 계획적인 지도를 갖고 있지도 않은 회사입니다. 모두 상승곡선을 타고 있을 때 하향곡선을 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 회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어려운 상황으로 일부러 돌진해 그것을 개선시키는 것이 여태까지 그녀가 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도전할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피오리나는 그에 덧붙여 아무도 보지 못한 기회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샀던 데이브 팩커드의 자서전, 『HP 방식(The HP Way)』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모두 합쳐 여섯 번을 읽은 셈이었다. 휴렛팩커드의 초기 이념인 ‘할 수 있다’ 정신에 대해 생각해 본 그녀는, 그 시절로 돌아가 근대적 변혁을 이루어냈던 힘을 다시 끌어낼 수 있다면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내게 기회를 주십시오! 잘 해낼 수 있습니다!”
--- 제3장 “내게 기회를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