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은 조용하였다. 은혁이 틀어놓은 음악이 들리자 서은은 새벽녘인 길가를 창밖으로 쳐다보았다. 은혁과 있을 때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서은의 빌라 앞에 도착하자 서은이 내리고 은혁 역시 내렸다. 은혁이 서은 앞에 서서는 진지한 목소리로 서은을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마음을 주고 싶은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야. 물론, 당신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 마음 당신에게 계속 주고 싶은데 허락해주겠어?” 앞에 서 있는 은혁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서은이 놀란 듯이 서 있지만 왠지 은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서은은 처음 만날 때부터 은혁에게 끌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 한 것이다. “……그 마음 내가 가져도 되나요?” 한참 후에야 은혁의 말에 대답한 서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은혁의 대답에 서은 역시 부드러운 목소리로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 마음 줬다가 도로 가져가지 않기.” 은혁은 미소를 짓고는 서은을 자신의 가슴에 가두고는 살짝 떼어내어 서은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하고는 다시 가슴속으로 당겨 앉으면서 귀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절대 강은혁의 마음은 하나야. 이제는 은서은이 가지도록 해.” “내 마음도 강은혁 씨가 가져가요.” 은혁의 품에서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서은의 목소리를 듣고 은혁은 가슴속이 뜨거워졌다. 서로를 그렇게 한참을 안고 서 있던 은혁이 아쉽다는 듯이 손을 풀고 서은을 놓아주면서 다시 한 번 서은의 이마에 짧게 입 맞추고는 차로 향하였다. “잘 자.” “네, 조심해서 가세요.” 차를 타고 가는 은혁을 지켜보고 서은은 은혁의 입이 닿은 이마에 손을 얻어 보고는 빌라로 들어갔다. ‘은혁 씨가 내 마음의 주인이듯 나도 은혁 씨 마음의 주인이 되고 싶어요. 사랑은 아직 모르겠지만……좋아하는 거 같아요.’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 은혁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번졌다. 30년 동안 살면서 한번도 가지지 못한 감정과 기분을 서은으로 인해 얻은 것이다. ‘은서은, 방금 당신을 봤는데도 또 보고 싶다.’
서은은 가은이 깨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헉, 깜짝이야. 아, 아직 안 잤어?” 집으로 들어서자 현관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가은을 보고 서은이 놀라서 소리치자 가은이 서은을 째려보았다. “야! 너 지금이 몇 시야? 엉? 전화도 안 받고 내가 얼마나 걱정한줄 알아?”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거실로 들어와서 방으로 들어가는 서은을 따라 들어오면서 잔소리를 해대는 가은을 보고는 가방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내보자 부재중 전화 30통이나 와 있었다. 은혁과 만나고 나서 온통 은혁에게만 신경을 쓰다보니 가방에 넣어둔 전화기를 미처 생각 못하였다. 가은이 걱정하고 있을 생각까지도 미안한 마음에 얼른 가은에게 사과를 하였다. “미안해. 진동이라서 못 받았어.” “그건 그렇고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사실대로 이실직고해라.” “뭐? 무, 무슨 숨기는 거 없어?” 가은이 뭔가 수상하다면서 고개를 저으면서 서은에게 묻자 아무 일 없다고 말하는 서은이었다. “웃기시네. 나 베란다에서 다 봤거든.” 서은이 아무 일 아니라는 말에 새벽 2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는 서은이 걱정되어서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도 안 받고 해서 베란다로 나가서 서은이 오는걸 보고 있는데 3시가 다되자 고급승용차에서 서은과 어떤 남자가 내린 걸 본 가은이 놀란 눈으로 베란다창문을 열고는 자세히 들여다봤다. “무, 무슨 소리야?” 서은이 설마 하면서 가은을 쳐다보고 묻자 가은은 벌써 다 알고 있지 하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서은이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이 실토했다. “그 남자 누구야?” “그게 그러니깐 어……” “답답해 빨리 말 못해? 누구 숨 넘어 가는 꼴 보고 싶어?” 가은이 가슴을 치며 흥분하면서 말하자 서은은 진정하라고 하고는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러니깐 내가 저번에 두부 사러 나갔다가 차에 치일 뻔했다고 했잖아. 그때 그 차 주인이야.” “뭐? 근데 왜 이 새벽까지 같이 있는 거야?” 서은의 말에 아까 전 멀리서 보았지만 둘의 행동으로 봐서는 이해 못 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가은이 물었다. “그게 그러니깐 어, 그 후로도 몇 번 만나고……” “뭐? 정말? 뭐하는 사람인데?” 서은의 말에 흥분하면서 말하는 가은을 보고는 잘못 걸렸다. 오늘 잠자기는 다 틀렸다. 하고는 한숨을 내쉬고는 울상을 지었다. “가은아, 나 피곤해 빨리 씻고 자고 싶다.” “이 계집애야, 지금 잠이 중요해? 어? 네가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데 혹시 이상한 놈 아니야? 겉보기는 안 그래 보이던데 뭐 하는 놈이야? 요즘 여자 등쳐먹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너는 순진하게 생겨서 그런 남자들이 접근하기 쉬워.” 솔직한 심정으로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서은이 혹시라도 이상한 남자를 만나서 이용당하는 게 아닌지 걱정인 가은은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 내자 서은이 이제는 포기한 듯 하였다. 가은이 한번 저렇게 나오면 궁금증이 풀리고 확실해질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되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휴,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러니깐 말해보라고” “M그룹이라고 거기 이사래. 그리고 나이는 서른 살이고” “뭐? 그럼 그 M그룹의 외동아들에 후계자?” M그룹이라면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기업이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큰 몫을 거두고 있는 만큼 가은도 잡지나 신문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특히 그 후계자가 얼굴 잘생겨 능력 좋아 배경 또한 화려하였다. 20대 여성들에게 완벽한 신랑감 후보로 꼽히고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수강생들도 언젠가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하는걸 들은 가은이 이렇게 흥분을 하였다. “그건 잘 모르겠어. 그때 명함에는 이사라고 적혀 있었거든.” “그래, 근데 나이가 너무 많은 거 아냐? 너랑 일곱 살이나 차이 나는 데 괜찮겠어? 그래서 오늘부터 사귀는 사이야?” 서은의 속을 알고 은근슬쩍 유도신문을 하자 그대로 넘어온 서은이다. “응, 오늘부터 사귀……에?” “오호, 딱 걸렸어!” 가은이 넘어왔다 하고는 서은이 말을 멈추는 걸 보고는 사악하게 웃었다.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쿡쿡, 그러니깐 괜한 잔머리로 넘어갈 생각 마세요. 은서은 양 지금까지 같이 있었어?” “응, 밥 먹고 왔어 늦은 시간인데 아는 형 가게에서 밥 사주더라.” 이제는 서은이 포기하고는 사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자 가은은 연신 옆에서 멋있다면서 감탄을 하고 있었다. 30분 정도 가은에게 시달리고 나서 언제 한번 소개하라는 가은의 말을 끝으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서보니 벌써 새벽4시가 넘었다. 서은이 침대에 누워서는 잠을 자려다가 옆에 둔 휴대전화를 꺼내서 문자를 보냈다. ‘은혁 씨 자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잘 자요.’ 문자를 전송하고 서은은 웃으면서 침대 옆 탁자 위에 스탠드를 끄고는 잠이 들었다. 서은과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온 은혁이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는 침대로 가서 누워서 잠을 자려는데 휴대전화의 문자 음이 울리자 누우려던 은혁이 다시 일어나서 휴대전화를 열고는 문자를 확인하였다. ‘은혁 씨 자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잘 자요.’ 서은의 문자에 은혁은 짧은 미소를 띠고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