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일상의 사건들로 이어져 있고, 그 사건들은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하는 말이 내 의식 수준을 결정하며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이 결국 내 삶과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 단순히 아이에게 숙제를 시키고, 빵을 나눠 주고, 자전거를 살지 말지, 저녁밥을 누가 차릴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의 가치를 실현시킬 지의 문제다. 일상의 사건 속에는 삶의 지혜가 되는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 위의 사례에서 자기 숙제 상관하지 말라던 승훈이를 어머니는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뒤에 어머니는 승훈이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엄마가 네게 상관하면 뭐가 문제인지 궁금하네.”
“…그건요, 엄마가 그러면 제 생각하는 지혜가 없어지거든요.”
어머니가 아이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들어 주자 아이는 보물같은 대답을 들려 주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생각의 싹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 p.6-7
제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겁이 난 저는 그냥 집을 나섰습니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려던 아침이었는데,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아이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을 품에 안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중 3 생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휴대폰으로 문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생일 축하해. 어제 저녁과 생일인 오늘 아침에 네 마음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큰 소리로 말하니까 재촉하는 듯 느껴졌어. 늘 엄마를 배려해 주는 아들이 선물 재촉한 게 아니었을 텐데. 네게 가짜 아훈 강사라는 말을 듣고 그동안 좋은 엄마 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뭐였나 생각하니 서글펐어. 엄마가 진짜 아훈강사이기 전에 지혜로운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사랑해."
아이에게서 금방 답장이 왔습니다.
"저도 아침에 엄마 보고 진짜 강사 아니고 가짜 강사라고 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앞으로 제가 말할 때 엄마가 이해하실 수 있도록 흥분하지 않고 말할게요." --- p.18-19
다음 날 아침밥을 하는데 퍼뜩 어제 내가 그 일을 잘못 처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선생님이 하시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가 아이 대신 문제를 풀어 주는 것이 아니다. 더더욱 정직하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 거짓말은 결국 아이들을 거짓말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정말로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드문 일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할까 생각하다가 저녁에 아이들이 들어오면 말해야지 하고 하루 종일 배운 내용을 생각하며 준비했습니다. 우선 작은아이에게 할 말을 생각했습니다. 작은아이와 미리 얘기하지 않고 큰아이에게 이야기하면 작은아이가 곤란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엄마: 민아야, 엄마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또 의논할 일이 있어.
민아: 무슨 일인데요?
엄마: 어제 언니 시계 깨졌을 때 엄마가 거짓말을 해서 말이야. 엄마가 너에게는 정직하라고
하면서 엄마가 거짓말을 해서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해. 엄마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을게.
엄마 용서해 줄 수 있니?
민아: 엄마, 그건 제가 잘못했기 때문이에요. 엄마 잘못이 아니잖아요.
엄마: 시계를 깬 건 네 실수였지만 거짓말한 건 엄마 잘못이었어.
엄마는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
민아: 알았어요. 엄마. 그리고 저도 거짓말하지 않을게요.
저는 놀랐습니다. 우리 아이가 저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위로해 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고맙고 진정 부끄러웠습니다. --- p.28-29
어린 날의 기억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 6학년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집 가정 살림이 최악이었던 시기였을 겁니다. 없는 살림에 할머니 수술비로 가게 전세, 단칸방 전세까지 모두 월세로 돌리고, 아마 말 그대로 길거리로 나앉기 직전이었지 싶습니다.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께서 사남매의 장녀인 저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만 아니었어도 내 인생은 화려했을 수 있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날부터 저는 ‘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화려했을 수 있던 삶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든 존재였구나. 내가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는 길은 빨리 독립해서 아버지에게서 떠나는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어떻게 하면 빨리 독립해서 부모님을 떠날 수 있을까 생각했고, 대학도 빨리 취업이 되는 전공을 선택했고, 취업 후 기숙사에 들어갈 때나 결혼할 때에도 부모님을 떠나는 일이 전혀 서운하지도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아름다운 인간관계 훈련을 받으면서였습니다. 그때 제가 지금처럼 마음이 따뜻했더라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었을 텐데요.
“아빠, 지금 짐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시는 거죠. 제가요, 아직은 어려서 제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 외엔 도와드릴 일이 별로 없지만요,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를 도와드릴 힘이 생기면 힘껏 도와드릴게요. 아빠 저희들을 위해 애써 주셔서 감사해요.” --- p. 49-50
우리는 서로 할 말 다 하면서 기분 상하지 않게 대화했고 문제해결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쉬운 것을요. 제가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니까 저도 이해받는 따뜻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내 생각을 비우고 상대방의 말이나 생각을 그대로 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대화할 때마다 아이들이 옆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은 여덟 살, 여섯 살인 남매인데 엄마, 아빠 눈치를 보며 주위를 맴돌던 아이들이 저희들의 대화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때까지 ‘옷 또 빨았어?’ 하는 아빠의 말 한 마디에 엄마, 아빠가 티격태격 다투는 모습을 보여 주다니요. 왜 아직까지는 그 생각을 못 했는지요. 남편과 다툴 때는 아이들 생각은 전혀 못 했으니까요. 저와 남편이 나누는 대화는 우리들의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는데 그 답답한 유산을 아이들에게 또 그대로 물려줄 뻔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진정한 의사소통을 원한다면 제가 먼저 배운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닫게 되다니요. --- p. 70
나는 그 주전자에 자신의 이름과 주전자 산 날짜를 적어 달라는 주원이의 얘기를 들으며 먼 훗날 주원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머릿결이 희끗희끗해진 아들이 어느 날 그 절을 찾는다. 그 가게에 들러 나열된 도자기 주전자들을 보며 그날, 주전자 뚜껑을 깼던 그날, 어머니는 가슴 조이는 나의 눈을 다정하게 쳐다보며 말씀하셨지. ‘주원아, 이거 뚜껑이 깨져서 사야 돼. 그래서 엄마가 사려고 해. 14만 원이라고 하네.’ 그리고 9만 8천 원을 선뜻 내면서도 화내지 않았던, 그리고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하는 내게 ‘중요한 걸 배웠네.’ 하셨던, 그리고 꼬옥 안아 주시던, 그 가슴에 묻혀 눈물 흘렸던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리라. ‘이 주전자 아직도 갖고 있는데.’ 하며 점원에게 한 마디 농담을 하지 않을까. ‘이 주전자 얼마죠? 저는 이 주전자의 원가를 아는데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눈물을 닦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또 다른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 p. 199
준수 어머니는 말했다.
“선생님, 제가 어제 하루였지만 배우지 않았다면 아이의 편지에서 맞춤법 틀린 것만 보여서 ‘너 이게 뭐야,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잖아. 네가 잘하면, 엄마가 오늘 아침처럼 너에게 기분 나쁘게 하냐고!!’ 했을 텐데요. 이번은 웬일인지 맞춤법이 아니라 편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의 변화를 기대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이더라고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준수 어머니는 눈물로 목이 메는 듯 말했다.
“제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사랑하니까 화도 내는 거죠. 그런데 아이는 제 마음을 모르나 봐요.”
그렇다. 화내는 엄마의 모습에서 그 안에 숨겨진 엄마의 사랑을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알 수 없다. 어른도 상대방이 사랑을 화로 표현하면 그 안에 숨겨진 사랑을 사랑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아이가 그러기를 바랄까? ‘사랑’을 ‘화’로 표현하면 ‘사랑’이 ‘화’ 속에 묻혀 버리거나 때로는 아무도 알 수 없게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준수 어머니는 이제 배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랑’을 아이가 ‘사랑’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 --- p. 342-343
아훈 프로그램의 목표는 문제상황을 분명히 보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 능력이 바로 분별력 있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며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평생을 바쳐 얻기 위해 노력할 만한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은 그렇게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의 결정체다. 어둡고 힘든 고통을 딛고 일어설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연구하고 훈련하며 변화한 결과다. 이 책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p.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