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이 기사를 통해, 산화티타늄이라는 것이 ‘광촉매’ 기능을 하는 것이고, 그걸 표면에 바른 후 ‘빛’을 받으면 오염 물질 따위를 분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사 작성자는 “혁명적인 유리”라고 표현했지만, 같은 원리를 이용한 형광등은 이미 여러 해 전에 개발된 것이다. 비로소 독자는, “스스로 청소하는 유리”라는 것이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유리의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노미터 수준으로 얇게 코팅하는 기술이 중요했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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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율 50퍼센트”는, 따라서, “평균적으로 모든 암 환자의 50퍼센트가 5년 이상 생존한다”는 표현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건 치료 기술과 상관없이, 단순히 일찍 발견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는 수치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완치율’을 높인다는 주장은, 그런 특정한 ‘완치율’ 개념 하에서, 타당하다. 독자는 거기서 숫자의 ‘마술’을 감상한다. 현대인은 자신이 암인지도 모르고 죽었던 과거 사람들과 달리, 초기엔 매우 천천히 진행하는 암을 아주 일찍부터 발견하려고 검사받으러 다니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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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안 걸리는 소”는 황우석 교수를 확실한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언론과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 연구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 역시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곳저곳에서 ‘회의 懷疑’의 징후가 포착되었다. 그러나 의심이 더 깊어지기 전에, 황우석 교수팀은 더욱 놀라운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광우병 내성소” 발표 후 불과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발표의 격이 확실히 달랐다. ‘영향력 지수’에서 최정상급이라 할 만한 저널에 논문이 실린 것이다(2월에 첫 보도가 나오고, 저널에는 3월에 실렸다). “복제한 (인간의)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다”는 내용이다. 언론은 2개월 전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열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그 ‘권위’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의존하고 의지해 마지않던 저널 가운데 하나인 『사이언스』에 실리는 성과인 탓이었다.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에 고무돼 있던 사람들은 이 ‘뉴스’에서 ‘첨단 과학’의 정점에 이른 한국을 결정적으로 ‘확인’하는 듯했고, 아낌없는 찬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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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황우석 신드롬”은, “하이테크 의료”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관련한 ‘담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황우석 신드롬”은 한국 사회가 ‘진실’보다는 ‘꿈’이 더 필요한 사회임을 “가슴 아프게” 보여 주고 있다. 황우석의 생가를 복원하고 명소로 꾸민다는 보도에 이르러, 신드롬을 넘어 ‘신화’의 탄생을 목격한다. 차라리 ‘그로테스크’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한 상황이다. 과학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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