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내가 이리 허름해 보이지만 이야기로 배를 채우고 나면 형색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기운도 더 세져서 웬만한 귀신은 접근도 못하지, 암. 그러니까 할배는 내게 이야기만 먹여 주면 되는 거야. 그럼 나는 할배가 금강산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 줄게.”
“으음……. 나의 수호 도깨비가 돼 주겠다?”
할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하더니 드디어 말끝을 잇는다.
“그러시게, 그럼! 나도 마침 말벗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잘되었군. 나를 얼마나 잘 지켜 줄지 솔직히 믿음은 가지 않네만, 내 속는 셈 치고 가 보지. 자, 자, 어서 앞장서시게나. 산이라 날이 금방 어두워지는구먼.”
할배가 서둘러 나를 보따리에 구겨 넣는다. 작전 성공이다. 조만간 허기를 채울 수 있겠지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댄다. 그것은 그렇고, 오다가다 만난 인연이라 해도 통성명은 해야 옳지 않겠는가? 그래, 내가 먼저 물어보자.
“고마워. 근데 할배 이름이 뭐야?”
“어우당 유몽인이라 하네. 그냥 어우당이라고 부르시게. 그러는 그대는?”
“그런 거 없어. 난 그냥 주머니일 뿐이야.”
“그냥 주머니라……. 그럼 내 그댈 ‘낭이’라 부르지. 주머니 ‘낭囊’ 자를 써서 말이야. 어떤가?”
--- 『나는야, 이야기 먹는 도깨비!』
그런데 할배는 다른 것에 더 놀란 낯빛이다.
“두, 두, 두더지가 말을 하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아차! 내가 깜빡하고 귀띔하지 않은 것이 있다. 누구든지 나를 지니고 있으면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말을 할 수가 있다. 살아만 있으면 짐승이든 나무든 물고기든 벌레든 관계없다. 그게 또 나의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후훗, 나는 얼른 할배 귀에 대고 이를 알려 준다. 늦게 알아 졸도라도 하면 낭패니까! 할배는 그제야 인사를 건넨다.
? ? ?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천하에 최고로 고귀한 종족은 우리네 두더지거늘,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녔으니. 나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죠. 그게 부끄러워 오랫동안 밖에 나가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얼마 뒤에 아들애가 사랑하는 두더지 처자가 있다고 하기에 잘 됐다 싶어서 흔쾌히 혼례를 허락했습니다. 며느리 될 아이가 하늘보다, 구름보다, 바람보다, 돌미륵보다도 강한 두더지라는데 무얼 더 재고 따지겠습니까?
--- 『두더지 아들 신붓감 찾기?
“조선인은 예절이 바르고 머리가 좋다더니, 참으로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껄껄껄.”
“무슨 말씀이신지요?”
관반사가 물으니 사신이 답하였습니다.
“내가 평양에 도착했을 때 장부 한 사람을 만났는데, 풍채가 장대하고 수염이 근사하여 분명히 남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소. 그래서 하늘이 둥글다는 의미로 손가락을 둥그렇게 말아 보였는데 글쎄 그가 손가락 모양을 네모로 만들어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땅이 네모지다는 뜻이었습니다.”
? ? ?
사신이 겪은 일화를 기이하게 여긴 관반사는, 평양에 사람을 보내서 장부를 수소문하였습니다. 이윽고 장부를 찾아낸 관반사는 사신의 손짓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물어봤습니다.
“사신께서 손가락을 둥그렇게 만들었을 적에 자넨 어찌하여 손가락을 네모지게 하였는가?”
장부는 어깨를 으쓱이며 심드렁히 대답했습니다.
“아아, 그거요? 그분이 동그란 절편을 드시고 싶다고 하시길래, 소인은 네모난 인절미 떡이 먹고 싶다 말한 것뿐입니다.”
--- 『웃음거리가 된 중국 사신?
사내를 본 무인은 화가 나서 마구 말채찍을 내갈겼습니다. 비쩍 마른 사내는 무인의 채찍을 이기지 못하고 배에서 힘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사내는 기를 쓰고 뱃머리에 매달렸습니다.
“요것 봐라, 네가 감히 내게 맞서? 어디 맛 좀 봐라!”
무인은 핏대를 세우며 채찍으로 더욱더 거세게 사내를 내리쳤습니다. 그래도 사내는 포기할 줄을 몰랐죠.
그때였습니다. 구슬처럼 작고 둥근 무언가가 떼굴떼굴 굴러 무인 발밑에 멈춰 서는 것이었습니다. 무인이 그게 뭔가 들여다보려고 하는데, 누군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에구머니! 저거, 저거, 눈알 아녀?”
그것은 무인의 채찍에 맞아서 빠진 사내의 눈알이었습니다. 그제야 무인은 머쓱해하면서 채찍질을 그만두었습니다.
--- 『눈알 뽑힌 무인?
이튿날이었어. 신응주가 집을 비운 사이 아내, 여종, 딸이 다른 마을로 놀러 갔어. 그런데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사방 천지에서 몰려들었어. 그러더니 큰비가 무섭게 퍼부었지. 대낮인데 마을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어. 심상찮은 것을 느낀 신응주 가족은 부랴부랴 집으로 다시 돌아왔어.
그런데 조금 있다 신응주의 집에 날벼락이 세 번 쳤어. 번갯불이 마당이며 집 안이며 데굴데굴 굴러다녀 밖에서는 불이 난 줄로 착각할 정도였지. 그렇게 하늘이 우지끈 찢기고 땅바닥이 갈라지는 듯하더니, 금세 아주 말짱하게 날이 갰어.
신응주의 집으로만 날벼락이 내리꽂힌 것이 기이해서 마을 사람 몇이 비가 멎은 후에 들어가서 살펴보니……. 글쎄! 아내, 딸, 여종 셋이 머리를 나란히 하고서 죽어 있더라는 거야. 이웃에선 벼락 맞아 죽었나 보다며 수군거렸지만 아무래도 이상했어.
--- 『천벌 받은 신응주네 가족?
스님은 뱀의 독이 온몸에 퍼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어올랐고 지독한 고통으로 기절하여 정신을 잃었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 가망이 없다 판단하고, 절 바깥에 초막을 지어 아픈 스님을 옮겨 누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어느 날, 산짐승 한 마리가 정체 모를 풀을 입에 가득 물고 스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녀석은 가져온 풀잎을 짓이겨 스님의 상처에 문질렀습니다. 몇 차례 그리하자 스님께서 눈을 떴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생사를 넘나들었는데 실로 기적이 아닐 수가 없었죠.
더욱 놀랄 만한 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눈을 뜬 이후에도 산짐승은 물러가지 않고 계속해서 풀로 치료를 했습니다. 덕분에 스님은 갈수록 증세가 호전돼 예전처럼 건강해졌습니다. 스님께선 ‘누가 나를 이리 극진하게 보살펴 주는 건가?’ 의아해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산짐승은 지난날 스님이 뱀에게서 구해 준 작은 노루였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