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예요?”
혜진이 가까운 곳의 가로수를 가리켰다. 흔한 은행나무라 세아는 저게 뭐 어떻다고,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흙 속에서 수백 개의 붉은 선이 솟아올랐다. 선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가로수를 밑동부터 감싸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꿈인가?”
혜진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동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아만은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여기서 멀어져야 한다, 지금 당장!
세아는 두 손을 뻗어 사람들을 뒤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달아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꿈같은 일과 마주쳤을 때 늘 그렇듯 멍청하게 굳어 버린 것이다.
“도망가야 돼요!”
“아니, 신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게 뭐예요?”
혜진이 더듬더듬 묻는 동안 붉은 선이 사방으로 뻗어 갔다. 커다란 붉은 밤송이 같았다. 선이 뭉친 중심은 징그러울 정도로 시뻘겠고, 선은 마치 핏줄처럼 생생하게 고동쳤다. 곧 중심이 입처럼 쩍 벌어지더니, 물컹하고 거대한 생명체가 스르르 흘러내리듯 기어 나왔다.
“저게 대체…….”
혜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듯, 생명체가 재빠르게 굴러왔다. 혜진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것은 단숨에 혜진을 덮쳤다. 물컹한 그것 안으로 혜진의 몸이 잡아먹히는 듯 빨려 들어갔다.
“으아아악!”
마침내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아는 그러지 않았다. 혜진이 거대한 생명체 안에서, 숨이 막히는 듯 입을 뻐끔거리며 눈을 치켜뜬 걸 보았으므로. 세아는 무얼 어째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생명체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잡아요! 혜진 씨, 내 손 잡으라고요!”
그러나 혜진은 공포에 질려 버둥거리느라 세아의 손을 붙들지 못했다. 세아는 입술을 꾹 깨물며 젤리 같은 생명체 안으로, 안으로 팔을 더 밀어 넣었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 그저 조금 시원했다.
마침내 혜진의 손을 잡은 순간, 꾸루룩 소리를 내며 생명체가 움직였다. 그리고 어찌할 틈도 없이 세아 쪽으로 한 바퀴 빙글 굴러 그대로 세아를 삼켰다. 숨이 막혔고, 혜진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양 세아를 끌어안았다.
같이 죽자는 건가, 세아는 숨이 막혀 죽어 가는 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는 절대!
펑!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그대로 생명체가 폭발했다. 물주머니가 터진 듯 진득하고 끈적한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세아와 혜진의 몸도 그대로 공기 중에 해방되었다. 기침을 쏟고 따가운 눈을 비비고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새하얀 글자가 세아의 눈앞을 가렸다.
[이세아. 24세. 각성 등급 S.]
“이게 대체 뭐야?”
세아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누가 자기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낯선 얼굴의 남자가 세아를 향해 절박하게 소리쳤다.
“저쪽도 구해 주세요, 저쪽도!”
아득하게 고개를 드니 수십 개의 기이한 생명체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중에는 머리가 둘 달린 사자도 보여서, 세아는 갑자기 영화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비현실감에 휩싸였다.
그녀는 남자의 손을 떨쳐내며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스킬을 개방합니다. 내부 폭발, 스킬 등급 S. 발동어 없음.]
“아무것도 안 하긴요, 방금 저 안에서 저 괴물을 폭발시켰잖아요!”
“제가 언제요?”
[스킬을 개방합니다. 고속 이동, 스킬 등급 S. 발동어 없음.]
“이 글자는 도대체 뭐야?”
세아가 멍하게 중얼거리는 사이 남자는 허둥지둥 그녀를 데리고 괴물 근처로 데려갔다. 세아는 반쯤 떠밀리듯 괴물에게 손을 댔고 그 순간, 다시 귀를 찢는 펑 소리를 들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