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말로 회사 때려치우고 싶어!”
오늘도 하루가 수라에겐 너무너무 길었다. 도준의 얼굴을 보는 것도, 그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것도 정말로 수라에겐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니네 이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너 같은 순댕이에게 왜 자꾸 못할 짓을 시키니? 그 인간은 아직도 자기가 놀아난 뒤처리를 하지 않고 사무실을 더럽히고 있니?”
“오늘도 봉지로 하나 가득 치웠어. 더러워 죽을 뻔했어. 정말 그 인간은 인간도 아니야.”
“봉지로 하나? 얼마나 큰 봉진데?”
도나가 눈을 빛내면서 끼어들었다.
“이따만~한 봉지. 얼마나 많은지 티슈 한 통을 다 쓴 것 같아. 아니, 이사실 안에 욕실도 있는데 물로 씻지, 종이 귀한 나라에서 왜 그렇게 낭비를 하냐고. 왜 물자 귀한 것도 몰라?”
수라가 중얼거렸으나 아무도 그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들만 반짝반짝 빛냈다.
“와우, 그렇다면 서너 번 이상은 했겠는데?”
“기본이 다섯 번이래.”
“성주 네가 어떻게 알아?”
“요즘 가장 뜨거운 소문 아니니. 아예 전설로 남았는데 너 몰라?”
“무슨 전설?”
“밤의 황제 한성금융 정도준 이사에 대한 소문. 아무도 근접 못할 정력을 타고났다고 요즘 소문이 짜해. 그야말로 전설의 사나이야. 수라네 이사를 만나는 여자가 남자 킬러로 유명한 여자거든. 그 여자가 나불거리고 다니는데 매일 밤 사무실에서 기본으로 다섯 번 이상은 한다더라.”
에?
수라가 몸을 일으켰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무엇보다 도준과 만난다는 여자에게 분노했다. 남의 상사 얼굴에 먹칠을 해도 분수가 있지. 아니 밤마다 놀아났으면 그걸로 끝내야지, 소문내고 다니면 어쩌겠다는 건지. 경제인인 우리 이사님은 얼굴 어떻게 들고 다니라고.
“유명하더라, 수라네 이사. 하루에 다섯 번은 기본이고 심하면 일고여덟 번을 한대.”
수라는 도준을 위해 변명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기분은 나쁘지만 결국 도준 자신이 뿌린 씨앗이니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많이 하는 남자는 하루에 다섯 번은 해. 그게 전설이긴 좀 그런데?”
도나의 말에 성주가 피식 웃었다.
“그거야 어쩌다 할 때나 그렇지. 날마다 하루에 다섯 번씩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니? 20대도 힘들어 그건.”
“대체 뭘 먹고살아야 하루에 다섯 번 이상이 가능할까?"
“그러게. 나도 궁금해, 뭘 먹는지. 수라야, 너네 이사 도대체 뭘 먹고 사니?”
성주의 물음에 수라는 잔뜩 눈을 흘겼다.
“왜? 너도 남자친구에게 좀 먹여보게?”
“응, 요즘 정력이 좀 떨어진 것 같거든.”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성주가 대답했다. 도나도 눈을 빛냈다.
“나도. 사실은 나도 알고 싶어.”
이것들이 요새 아주 노골적이라니까. 눈만 흘기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네 남자친구는 몇 번을 하는데? 다섯 번 하니, 못 하니?”
“네 남자친구는 다섯 번을 하나 보지?”
아옹다옹하는 도나와 성주를 지켜보던 수라는 자신에게만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이 어쩐지 초라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나도…… 남자친구나 사귈까 보다.”
“남자를 사귄다고? 우리 은수라가? 소개팅 주선해줄까?”
수라를 보며 성주와 도나가 반색을 했다.
“응. 주선 좀 해봐, 멋진 남자로. 아냐, 아냐, 우선 살을 빼야겠어. 내가 석 달 동안 10킬로그램을 뺄 테니까 미리 물색해두었다가 그때 소개해줘. 10킬로그램을 빼고 난잡하게 살 생각이니까. 10킬로그램은 석 달이면 빼겠지? 좋아, 석 달 후부터 내가 난잡의 진수를 보여주겠어.”
자신의 양 볼을 손가락으로 뽁뽁 찌르는 수라의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도나는 웃고 말았다. 저것은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나? 눈은 동그랗게 크고 사과 같이 붉은 볼과 둥근 얼굴은 지금의 수라 체형과 잘 어울렸다. 요즘 트렌드와는 다르더라도 충분히 예쁘고 귀여운 수라였다.
“넌 지금이 제일 예뻐.”
성주도 도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수라가 석 달 동안 10킬로그램을 뺀다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조금만 먹지 않아도 분명 살이 팍팍 빠질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만큼 수라는 자주 많이 먹는 편이었다. 그런데 살을 빼서 난잡해지겠다고? 그건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수라가 난잡해지는 것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수라는 푸짐하게 나오는 정식에, 성주 몫의 절반, 그리고 간혹 도나가 밀어주는 것들까지 한 시간 동안 모조리 먹어치웠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나중엔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너무 많이 먹었나 봐. 화장실 갔다 올게.”
방에서 나온 수라가 미닫이문을 닫고 막 몸을 돌리려는 찰나, 옆방 문이 열리더니 손이 쑥 나와 수라의 팔을 잡고선 안으로 확 끌어당겼다. 앗, 소리도 낼 새 없이 방 안으로 끌려 들어온 수라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이사님!”
잔뜩 굳은 얼굴로 문을 닫은 도준이 몸을 반쯤 굽혀 수라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의 얼굴에는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다.
“은수라 씨?”
“네?”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군.”
이렇게 가까이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본 적이 없던 수라는 코가 닿을 듯 바짝 앞에 있는 도준의 얼굴에 그만 넋이 나가버렸다.
도준이 그녀들이 식사한 옆방에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큰 소리로 떠든 그 얘기를 다 들었단 말인가? 오 마이 갓. 인간이 아니라고 욕 했는데 별별 욕을 마구마구 했는데, 제발 그 욕을 도준이 듣지 않았기를. 도준이 여기에 온 것이 조금 전이기를.
“그 중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어째서 내가 밤이면 밤마다 사무실에서 여자랑 뒹군 그런 놈이 됐는지, 인데, 답은?”
억! 다 들었구나.
분노로 활활 타고 있는 도준의 눈을 본 순간 수라는 사무실에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은 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 마이 갓! 아무래도 대형 사고를 친 것 같아!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