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옮기자 해서 산더러 여기서 일어나 저 바다 속으로 가거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내가 나더러 옮겨 가라고 명령을 해야 옳은 일이다. 어디로 옮겨 가란 말인가? 하나님께로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됨이다. 내가 산 같은 나를 바다같이 무한한 하나님 속에 던져 하나가 돼버리면 산을 마음대로 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다. 믿으면 (내가 하나님과 하나 되면) 된다(물건이 나와 하나 된다). 다 됐다. (《함석헌 전집 5: 서풍의 노래》 317쪽) 하나님이 있다거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을 초월하고 아우르며, 모든 것의 속의 속에, 깊이의 깊이에 계신다고 믿어지는 이에게 가까이 가면, 그이와 하나로 되면 모든 물건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또 모든 물건들과 하나로 될 수 있다. 그러면 매임 없이 기쁘고 힘이 난다. 물건과 일에서 자유로우면 나를 맘대로 움직일 수 있고 물건과 하나로 되면 물건과 일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 _‘1월 4일-믿으면 된다’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되는 생각이 꽉 차서 절로 나오는 감동이 찬송이 되어야 하고 그 말이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참된 생각이 여물어져 하나님과 일치되는 생각을 하게끔 되어야 찬송과 기도가 필요한 것이지 그 밖에는 거짓된 것이라 필요가 없다. 기도와 찬송이 우리가 인사치레하는 것같이 하고 있으니 그것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무의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석 유영모 어록》 28쪽)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어서 하나님을 분명히 느끼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찬송이 참된 기도요 찬송이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없고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도 경험하지도 못하는데 참된 기도와 찬송이 나올 리 없다. 기도와 찬송이 그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속삭임이요 다른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라면 기도, 찬송이라고 할 수 없다. _‘2월 18일-참된 기도와 찬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