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하자면, 라곰은 저마다 지닌 삶의 방식을 지켜주는 조절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정해진 수준의 라곰은 없다. 라곰은 사람마다, 장소마다 다르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이상적인 조건을 찾고, 자신만의 라곰을 찾는 데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것이 완벽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완벽은 사실 라곰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직장과 집, 절박과 만족, 휴식과 활동 사이에서 어렵게 균형을 유지하는 삶이 나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삶이라면 지극히 편안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라곰이 진정 최선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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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세탁기를 가질 필요가 없듯이 우리는 같은 신을 같은 방식으로 숭배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를 만족시킬 해결책은 충분히 있다. 아니,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모두 평등하게 불만족할 해결책은 있다. 이런 현실적인 타협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라곰한 사고는 인류의 형제애를 강조한다. 아니, 자매애라고 해야 할까? 흐음….
자유, 평등, 형제자매애! 이것이 바로 라곰한 현대의 캐치프레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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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뉴스 피드는 한두 가지로 한정시킬 수 있다. 트위터를 끄고 갑자기 온 세상이 얼마나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지 보라! 분노할 일은 틀림없이 줄어들 것이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 열 명이 페이스북에 사진이나 상태를 게시할 때만 알림을 받도록 해두었다. 끝없는 정보의 파도를 헤치며 서핑할 필요는 없지만,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라곰한 정도로 파악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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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어는 널리 전파할 가치가 있는 기발하고 독창적인 단어를 자랑할 수 있다. 라곰이 특별한 점은 현지 문화에서 갖는 탁월한 위상이다. 마찬가지로 스웨덴어이며 정부에 대해 시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옴부즈맨'도 전 세계에 알려져 있지만, 라곰이 훨씬 더 높은 위상을 갖는다.
라곰이 추상적이고 약간은 불분명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스웨덴 사회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라곰은 곧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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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라곰의 특징이 필시 보편성은 아닐 것이다. 라곰이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맞지만, 여러분에게 꼭 맞는 평형 상태를, 혹은 여러분의 싱크대에 맞는 수도꼭지를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수없이 많은 라곰이 꽃피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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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환경 속에서는 절약하되 인색하지 않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인색한 것은 그 누구도, 스웨덴인들조차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물건을 버리는 대신 재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이는 실제로 상상력에 달린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민속공예로서 여전히 스웨덴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투리 천을 이어 만든 깔개 래그 러그와 퀼트가 아름답게 보존된 것을 보면 재사용이 왜 상상력의 문제인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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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기존 패션 역사에 수류탄을 던질 시간이 되었다. 코코 샤넬은 스웨덴인이었다!
적어도, 결론은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의류 디자이너이자 조향사였던 샤넬이 “어떤 사람들은 명품이 가난의 반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명품은 저속함의 반대다”라는 명언을 남긴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말은 굉장히 라곰하지 않은가? 생각해보자. 장차 어느 고고학 연구팀이 라곰의 십계명이 새겨진 명판을 발굴한다면, 샤넬의 선언이 적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맨 위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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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의 머릿속에서 섹스에 미친 스웨덴인의 이미지는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어둡고 문화적으로 우울함에 집착하는 이미지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혹시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된 것은 아닐까? 선천적으로 삶을 어둡게 바라보는 이들은 행복해지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한 해에 두 달만 햇볕을 봐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그것도 운이 좋다면 말이다.
--- p.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