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출간된 윤락근 변리사와의 공저 『특허전쟁』은 기업 간에 벌어지는 특허전쟁의 맥락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관점으로 특허제도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특허제도를 설명하고 이해함에 있어 좀 더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사고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특허는 비즈니스를 하다가 혹은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면서 생기는 것이므로 일관되게 비즈니스 관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많은 전문가들은 법조인처럼 굴었고 또 상당수는 기술을 강조하려는 엔지니어 관점에 머물러 있었다. 전문가들의 오해와 편견은 국가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의 눈을 가릴 수 있으며, 비즈니스를 하는 일반인들에게 중대한 판단착오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전문가의 시야를 확 트이게 하고 싶었다. 오해와 편견의 단층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 전문가를 상대로 직접 설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인을 상대로 이야기해 보자, 어깨에 힘을 빼고 알기 쉽게 그러면서도 폭넓게 특허를 다뤄 보자고 기획한 책이 바로 전작『특허전쟁』이었다.
이 책은『특허전쟁』의 후속작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전작에 종속되는 속편이 아니라 전작과 무관한 한 권의 책이다. 전작의 약점은 제목과는 달리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특허전쟁의 속살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특허전쟁을 관망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기는 했지만, 글로벌 특허전쟁의 윤곽을 이해하고 전체를 조망하는 데는 많이 부족했다.
글로벌 특허전쟁은 으레 벌어지는 우연한 특허분쟁이 아니다. 특허분쟁은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지식과 경험은 지금의 글로벌 특허전쟁을 이해함에 있어 극히 불충분하다. 우선 이 특허전쟁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규모가 매우 크다. 또한 이렇게까지 글로벌 대충돌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이 시대가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는 맥락이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도대체 왜 싸우는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어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무슨 교훈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가?
글로벌 특허전쟁은 단순한 소송전이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변화를 표상하며 산업의 미래를 호명한다. 특허가 산업과 비즈니스에 불확실성을 초래하기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글로벌 기업들은 특허를 이용해서 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무릇 이해관계가 첨예한 영역에서 협상과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것도 어떤 모범이 없는 새로운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를 위해서는 집중된 자세가 필요하며, 그 집중된 자세를 위하여 작금의 글로벌 특허전쟁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특허소송이 발발하면 관련 당사자들은 최선을 다해 공격하고 방어해야 하므로 집중이 생긴다. 당사자가 이렇게 소송의 성패를 위해서 집중할 때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이 드러남을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관전자의 집중을 요구한다. 도대체 이 소송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라는 자문에 답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시대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제조사의 미덕임을 입증했다. 애플과 구글은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전위에서 창의성과 상상력이야말로 혁신의 동인임을 증명했다. 창의적인 개인과 중소기업의 발전, 소프트웨어 중심의 IT 산업, 제조사에서 소비자 중심의 사회, 이종 영역 간의 통섭과 융합, 기술과 예술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 이것은 시대의 변화를 시사하는 열쇳말이 된다.
특허가 기업경영과 산업정책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할 것은 '중요함의 상대성'이다. 때로는 매우 중요할 수 있으며 또 때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특허에 대해 지나치게 좌고우면할 까닭은 없다. 좋은 기술과 좋은 마인드를 가지고 시장과 소비자에게 신뢰를 받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다. 모든 좋은 지적재산은 결국 사람의 창의성과 상상력, 그리고 그것에 의해 뒷받침되는 열정에 의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시스템보다는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그리고 그 관심을 지켜내기 위해서 다시 시스템을 바라보는 자세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이 책이 독자들이 갖고 있던 평소의 질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답할 수 있기를, 또한 특허제도와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어떤 오해와 편견이 있었다면 그것들을 흔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