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100으로 읽는 문화콘텐츠 입문 사전』은 문화콘텐츠와 문화콘텐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담론의 초석을 보다 객관적인 관점으로 조망하기 위한 책이다. 기존 문화콘텐츠학에서 논의되었던 주요 개념들을 모두 정리해 보고자 하는 야심(?)에 찬 목표는 마치 18세기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를 떠올리게도 했다. 당시 지식이 대중화되면서 새로운 사회를 여는 계기가 된 백과전서파의 작업처럼 이 키워드 사전을 통해 문화콘텐츠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문화콘텐츠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를 확인코자 희망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문화콘텐츠를 전공한 교수와 박사로 구성된 10명의 연구자들이 이 사전 작업을 위해 1년여에 걸쳐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희망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문화콘텐츠학의 내실을 기하고자 하는 창대한 희망을 품은 우리의 노력은 사전 집필의 전 과정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본다. 인터넷이나 기타 문화 사전 등에서 서술된 차원을 능가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우리는 독자들이 이 키워드 사전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작업을 시작했다. 키워드 항목 선정 과정부터 험난한 노정이 펼쳐졌다. 최초 문화콘텐츠 학과 커리큘럼과 문화콘텐츠 현장 트렌드를 기반으로 선정된 400여 개의 항목은 회의를 거듭한 끝에 3/4 가량으로 추려졌으나, ‘뭔가 2% 부족하다’는 중지가 모여 재차 키워드를 수집하고 논의하기를 반복하였다. 그 결과 100여 개의 키워드가 확정되고 본격 집필을 시작했지만 집필 과정 중에도 끊임없이 키워드의 학문적 유효성과 현장성, 시의성 등에 따라 버리고 취하기를 반복하였다. 각자의 학문 분야에서 필수적인 키워드들을 지속적으로 제안하며 ‘다중’,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디지털 플랫폼’, ‘도시재생’, ‘문화구분지수’ 등이 추가되기도 하고, 중간 중간 학생 설문작업을 실시하여 ‘싸이현상’, ‘호모 디지피엔스’, ‘리얼 버라이티쇼’, ‘e-스포츠’ 같은 트렌디한 키워드가 추가되기도 하였다.
키워드를 집필하고 검증하고 수정하는 과정 역시 녹록치 않은 여정이었다. 각 항목을 저술한 필진들 각자는 이미 해당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문화콘텐츠라는 큰 틀 속에서 재차 탐구하고 요약 정리하면서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광대한 문화콘텐츠학의 바다 위에서 헤엄치면서 자신들이 현재 붙잡고 있는 나무토막이 초라하다는 것을 재삼 확인한 것이라고나 할까. 때문에 자신들이 붙잡고 있는 이 조각이 분명하고 확실한지를 서로가 크로스 체크를 하며 끊임없이 검증을 거쳐야만 했다. 매주 주기적으로 강독 모임을 통해 항목 하나하나를 일일이 독해하는 난상 토론과 상호 보완 작업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미 토론을 통해 수정 집필까지 완성된 항목을 다른 저자가 재차 검증하고 추가적으로 내용을 보충하는 작업 또한 진행되었다. 사전의 각 항목이 최대한 객관적이고 현장중심적으로 기술되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목적의식이 이러한 여정을 감내하게 했다. 피에르 레비의 ‘집단지성’ 개념이 여실히 증명된 지난한 과정이었다.
---「저자 서문」 중에서
001 문화콘텐츠 cuture contents
문화적 요소를 지닌 내용물이 미디어에 담긴 것.
[어원?전개]
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국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한국 대중문화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시기에는 한국산 영상물과 가요가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하며 지속적인 해외 진출을 모색한 바 있다. 2000년을 전후로 한류가 본격화되고 2001년 8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되면서,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문화콘텐츠라는 우산용어가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다.
이후 10여 년간의 시간을 거쳐 현재 문화콘텐츠는 대중에의 활용을 전제로 한 무형의 문화적 결과물 전반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다만 그 범위를 대중문화(popular culture)로 한정하여 칭하는 경우 '대중문화 콘텐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아울러 한글 표기에 있어서도 아직까지 '콘텐츠'와 '컨텐츠'가 혼재되어 있다.
한편 해외의 경우 주로 디지털 기술과 관련된 영역에 한해 콘텐트(content)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컴퓨터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DLC(DownLoadable Content)라는 용어가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이다. 해외에서도 문화적 요소를 지닌 내용물 전반을 콘텐트로 지칭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것이 한국적인 문화콘텐츠 개념의 전파에 따른 결과물인지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설명?심화]
문화콘텐츠라는 용어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용어를 구성하고 있는 두 단어인 '문화'와 '콘텐츠'가 어떠한 의미로 결합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먼저 콘텐츠는 '미디어에 담긴 내용물'을 의미한다. 문화콘텐츠 논의 초기에는 이 미디어를 디지털미디어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미디어 전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는 콘텐츠를 수식하는 용어로 콘텐츠가 '문화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화적 요소를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은 예술성·창의성·오락성·여가성·대중성으로, 한양대 박상천 교수는 창의성과 지적·정서적 만족으로 정의 내린다.
앞선 설명을 따르면 문화콘텐츠란 '문화적 요소를 지닌 내용물이 미디어에 담긴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콘텐츠는 인쇄물에서부터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문화행위 활동 결과물 대부분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지닌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매년 『콘텐츠산업백서』를 발간하여 산업적인 활동이 이뤄지는 콘텐츠에 대한 구분을 간접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이에 해당하는 콘텐츠 장르는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게임, 캐릭터, 만화, 출판(서적), 정기간행물(신문, 잡지), 방송, 광고, 지식정보, 패션문화로 총 12개이다.
문화콘텐츠를 보다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접 용어와의 개념 구분이 필요하다. 문화콘텐츠와 문화상품의 구분, 문화콘텐츠산업과 문화산업의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따르면 문화상품은 문화콘텐츠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전통적인 소재와 기법을 활용한 상품까지 함께 일컫는 것이고, 문화산업은 문화상품과 관련된 산업으로 이 또한 문화콘텐츠산업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령에 명시된 문구를 기반으로 한 것이므로, 인접 용어와의 개념 구분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한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문화상품 제작-유통-향유 방식의 변화
1990년대를 기점으로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영화·음악·출판물을 비롯한 무형의 문화상품이 디지털기술을 통해 한 데 묶이게 된다. 이후 문화상품의 제작-유통-향유 방식이 본격적으로 디지털화됨에 따라서, 이들을 통칭할 수 있는 용어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다.
(2) 한국산 대중문화의 해외진출 활성화
2000년을 전후로 한국에서 제작된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자, 당시 정부는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같은 기관의 설립은 이에 대한 반증이다. 이후 서로 분야가 다른 결과물들을 하나로 묶어서 언급할 수 있는 대표용어가 필요해졌으며, 문화콘텐츠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3) 인문학의 위기
2000년을 전후로 '인문학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문학·사학·철학 관련 대학전공의 기피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는 각 대학이 해당 학과를 문화콘텐츠학과로 개편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용어와 개념의 난맥 속에서도 문화콘텐츠 관련 교육과 학술적인 연구는 양적 팽창을 거듭하였다.
문화콘텐츠는 최초에 트렌디한 용어로 간주되어 많은 이들이 단기간에 사장될 용어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 용어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2)의 경우 싸이, 소녀시대, 카라, 비스트 등 최근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1)의 최근 사례인 유튜브 등과 결합하여 전 지구적인 전파력을 지니기도 한다.
아울러 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널리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로 특유의 결합력을 들 수 있다. 문화콘텐츠를 이루는 요건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부재한 가운데, 이 용어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뜻하는 듯한 뉘앙스를 공중에게 전달하므로 지역문화콘텐츠, 역사문화콘텐츠, 음식문화콘텐츠, 궁중문화콘텐츠와 같은 다수의 파생용어들이 생성되었다. 이는 의도하였든 또는 의도하지 않았든 문화콘텐츠라는 용어의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현재 문화콘텐츠라는 용어는 정의에 있어서 명확한 해답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대상을 한꺼번에 지칭할 수 있는 편리한 용어로 사용되어 왔으며, 현재 대중적으로 그 쓰임새가 어느 정도 정착된 용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용어는 끊임없는 학술담론이 생성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류 연구, 스토리텔링 연구, 글로컬라이제이션 연구 등이 문화콘텐츠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연구 분야로, 이들은 차츰 세를 확장하며 문화콘텐츠의 이론적 배경 생성에 기여하고 있다.
[연관탐색어]
전통문화, 대중문화, 미디어, 콘텐츠산업백서, 문화산업, 문화상품, 디지털 기술, 한류, 스토리텔링, 글로컬라이제이션
[여기서 잠깐] 문화콘텐츠 개론서 일람
--- 본문 중에서
문화대차와 문화세차 cultural difference & cultural distance
문화대차(cultural difference)는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문화 간의 차이를, 문화세차(cultural distance)는 동일 문화권 혹은 사회 내 두 그룹―예를 들면, 도시그룹과 농촌그룹, 원주민 그룹과 이주민 그룹에서의―의 문화적 거리나 갭을 의미.
[어원?전개]
문화대차와 문화세차의 구분은 사회심리학자인 트리앤디스(Harry C. Triandis)에 의해 보다 더 명확해졌다. 그는 문화세차를 “문화대차가 심해져서 서로 간에 소통이 힘들어지게 된 나머지 결국 갈등이 발생할 수 있게 되어 문화 간에 거리가 벌어질 정도의 차이”라고 정의한다. 문화세차는 민족, 인종 간의 문화 차이뿐만 아니라 문화와 연결되는 계급, 지역의 차이 및 충돌·갈등 가능성까지 내포된 개념이다. ‘문화적 거리’로 번역되기도 한다.
[설명?심화]
일반적인 문화차이를 의미하는 문화대차는 어느 정도는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예를 들어 문화권이 달라서 인사의 행위가 다르더라도 하더라도 호의에 근거하고 있는 인사라는 것을 서로가 명확하게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용인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호적인 인사는 인간 모두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이고도 보편적인 내용이다.
반면 문화세차는 문화대차의 경우와는 달리 관용이나 이해만으로 해결될 수 없을 경우가 많을 듯하다. 문화세차는 문화 간 갈등이 심화되어 충돌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한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사항들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민족이나 인종 등의 문화 차이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세차에 의해 문화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은 아주 다양하다. 가장 비근한 예는 사회 내에서의 언어 차이다. 본래부터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문화 간의 갈등을 낳게 만들 소지가 상당히 많은데, 한 나라에서 흔하게 쓰이고 있는 단어가 다른 나라들 혹은 그 나라의 언어들에서 유사하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로 번역되거나 사용될 수 있지만, 실상 실제 단어의 쓰임새나 속 내용은 많이 다른 상황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탓이다. 언어가 다르면, 오역이 되거나 직역을 해도 뜻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나아가 전혀 다른 뜻이 될 수도 있으므로 충돌이 될 가능성이 많다. 우리말의 ‘니가(‘네가’의 비표준어)’라는 표현이 종종 흑인 비하를 뜻하는 ‘니가(nigger)’로 잘못 들리게 되는 경우가 좋은 예다. 그밖에도 사회의 구조적 차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종교의 차이, 삶의 표준이 차이가 있는 것 등을 문화세차의 주요 원인 및 내용으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문화세차는 문화 간 차이로서의 문화대차보다 좀 더 그 내용이 첨예한 편이다. 음식, 풍습, 언어, 사회 내 위치 등 온갖 종류의 다양한 문제들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문화 차이에서 기인된 행위는 프랑스에 사는 프랑스인들이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대차라는 점에서 용인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행위 상황은 단순히 문화차이, 곧 문화대차의 차원에서 문화상대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차이에서 기인된 행위가 동일 사회나 문화권 내에서 계속 발생한다면 문화세차적 차원에서 구성원들간에 심각한 지속적인 문화적 갈등 상황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많다.
문화적 갈등과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문화세차적 문제들은 세계 모든 다문화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화세차의 문제들을 문화 상호간의 이해 및 혼종 개념 등으로 진정 넘어서려 노력할 때 문화다양성의 현현이 실제로 이루어 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연관탐색어]
민족, 인종, 언어, 풍습, 문화충돌, 다문화사회, 관용, 사회구성원, 문화상대성
[추천문헌]
박치완, 「문화/콘텐츠 연구의 현안과 과제 ―세계화에서 지역세계화로, 문화세차에서 문화다양성으로」, 『동서사상』 제13집, 2012.
Crotts(J.C.), ‘The Effect of Cultural distance on Overseas travel behaviors’, Journal of Travel Research, August 2004, vol.43, no.1.
Triandis(H.C.) & Suh(E.M.), ‘Cultural influences on Personality’, Annu. Rev. Psychol 2002, 53.
Samovar(L.A.) & Potter(R.E.), Intercultural Communication, Wadsworth Learning, 2009.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