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소녀의 정신 나간 일기 제2~3권-1990년과 1991년의 기록--- p. 12~13
내가 두 번째 일기장을 세상에 공개하는 이유는 첫 번째 일기장을 공유했던 이유와 같다. 이 일기를 읽고 있으면 웃음이 나고, 십대 때 아무리 정신이 회까닥 돌았어도 인생은 아무 탈 없이 굴러간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다. 새로운 이유도 추가됐다. 첫 번째 일기장을 출판한 후, 나처럼 스스로 미쳤다고 여기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해를 하고 거울을 보며 절망하는 젊은이들. 사춘기 시절에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혐오했는지, 다른 친구들처럼 ‘진짜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다른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첫 번째 일기가 출판된 후,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던 내 여자친구들이 실은 당시에 나와 똑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다는 편지를 보내줬다! 사춘기는 정말이지 짜증나는 시기다. 누구에게나 십대 시절은 똥 같지만 참고 살다 보면 또 계속 살 만하다.
어쨌든,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해피 먼데이즈 밴드가 명곡을 쏟아내고 있다. A레벨 시험이 다가오고 핀의 엉덩이는 역시나 국보급이다. 일기장 맨 끝에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한 답을 적어놓았다. 알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새로운 레이의 탄생!--- p. 20
새로운 십 년이 시작됐다! 새해다! 새로운 레이의 탄생이다! 게다가 월요일이기까지 하다. 1990년도는 제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80년대가 완전히 엿 같아서 내가 더 들뜨는 걸까.
어젯밤 핀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조금만 더 달라지면’ 나를 여자로 좋아할 것 같은 뉘앙스를 마구마구 풍겼던 것 같다. 그때까지 얼마 안 걸릴 거다. 조금만 더 달라지면 되니까. 걷기 운동을 조금만 더 해도 되지 않을까? 젠장! 핀의 여친이 될 생각만 해도 오르가슴이 폭발한다. 오르가슴 폭발이라는 게 있지도 않은 말이라는 건 알지만 상관없다. 그만큼 내 심정을 표현해주는 말은 없으니까.
엄마의 엉덩이 문신--- p. 59
저녁에 엄마한테 가서 요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 엄마가 말했다. “레이첼, 엄마가 할 말이 있어. 아드난이 영구적으로 여기서 살 수 있게 하려면 우리가 결혼을 해야 돼.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 엉덩이에다가 아드난 문신을 새겼어.” 그러고는 “유후!” 하면서 바지를 살짝 까 내렸다. 엄마 엉덩이에 빨간 팬티를 입은 시커먼 보디빌더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내일 학교에 가야 하고 초서에 관한 에세이도 써야 한다.
그런 내게 엄마는 물었다. “어때?” 나는 진심으로 솔직히, 완전 끔찍하다고 말해줬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아, 재미있잖니.” 아뇨, 엄마. 재미는 앨턴 타워 테마파크에 가서 찾아야죠. 꽉 쪼이는 빤스를 입은 남자의 문신을 엉덩이에다가 15센티미터 크기로 새기는 건…… 만약 내가 그랬으면 어땠을 거 같아요?!
뚱녀에 관한 편견--- p. 76~77
핀은 술에 취하지 않으면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질 못한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의 다 핀이 아주 쿨한 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데 말이다. 그렇게들 생각하는 이유는 핀이 몸매가 좋기 때문이다. 그가 쿨하지 못한 놈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하는 거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편견과 비슷하다. 나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핀은 몸매가 좋다는 이유로 편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불쌍하지는 않다. 핀이 되고 싶어 미치겠다. 아니, 핀과 함께 있고 싶어 미치겠다.
결혼을 또 하시겠다고요--- p. 138~139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방금 엄마가 수요일에 아드난과 결혼을 할 거라고 내게 말했다! “휴우, 신부 들러리 노릇은 못해드리니까 그렇게 아세요. 결혼식에도 안 갈 거예요.” 내 말에 엄마는 속상해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난 엄마의 지난 번 결혼식에도 갔었다고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결혼을 할 건데요?! 스탬퍼드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씨! 엄마는 성혼 선언을 할 때 아드난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를 똑바로 발음하게끔 가르쳐야 할 거다. 지금 아드난은 ‘안녕’도 제대로 발음을 못하니까. 내가 못되게 구는 건가. 아드난은 괜찮은 사람이고 그의 영어는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아, 진짜, 이건 아니다.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그냥 싱글맘으로 살 수는 없는 건가? 여자가 남자 없이 살아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다. 엄마는 그걸 알까? 한 남자와 끝냈다고 해서 다른 남자로 굳이 옮겨가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게다가 왜 스탬퍼드 출신의 평범한 남자가 아닌 건데?! 왜 라틴어를 가르치는 게이 아니면 모로코인 보디빌더냐고! 정육점 주인이나 회사원 같은 평범한 남자는 왜 안 되냐고?!! 단백질 음료를 먹어야 하는 남자가 아니면 좋겠어!
쓸모 있는 존재--- p. 180~181
가끔 행복하긴 하다. 하지만 늘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쓸모 있는 사람이고도 싶다. 남자들을 수백 명 봐왔지만 핀처럼 내 영혼에 불꽃을 일으킨 남자는 없었다. 내가 그를 지나치게 이상화시키고 있다는 거 안다. 그도 인간일 뿐인 것을!
무조건 입학 허가--- p. 209~210
이럴 수가! 헐 대학교에서 무조건 입학 허가를 받았다!!! 새우를 사가지고 집에 오니까 우편물이 와 있었다! 에드윈 호킨스 싱어스의 노랫말처럼 [오 행복한 날Oh Happy Day]이다!!!!
대박!!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렇게 받다니!!
역시 이럴 운명이었던 거야. 좀 소름 돋기도 한다. 미쳤어.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런 깜짝 선물이라니!! 역시 내가 맞았다. 이제부터는 내 머리가 하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 나는 항상 온갖 주제로 혼잣말을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했던 말이 맞아떨어졌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그런 괴상한 본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본능이 무어라고 지시하든 따라야 한다. 하지만 다른 생각들과 뒤섞여, 마치 내가 신에게 말을 할 수 있고 신이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고 여기게 한다. 이런 이상한 생각들만 분리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가능할 수도…… 있다. 어쩌면. 뭐가 됐든, 좋은 시작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완전 똥멍청이의 느낌은 아니다.
자랑스러운 레이첼--- p. 267~268
오늘 아침 10시 30분쯤에 부츠에 갔다. 사람들이 몰리는 점심시간 전에 갔지만, 노후 연금 수령자들이 혈압약을 사러 와서 매장 안이 북적거렸다. 어쨌든 체중을 달아보니 73.7킬로그램이었다.
19킬로그램 정도 빠졌다.
엄청나다. 19킬로그램이라니.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레이첼, 훌륭하구나. 너도 자랑스럽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랑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부피는 좀 줄었는데, 머릿속에는 여전히 지방이 느껴진다. 난 아직도 예전 그대로인 것…… 같다. 못생긴 년. 마음속으론 섹시해지고 싶은데 모르겠다. 그냥 살을 더 빼야 하는 건가. 평균 사이즈에 더 가까워지면, 그때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 들까. 그때는 다른 소녀들처럼 예쁘고 여자다워진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이도저도 아닌 레이가 아니라. 살이 빠져도 내 머리는 여전히 미쳐 있을 거다. 12사이즈 원피스를 입은 정신 나간 여자가 되겠지. 내가 한 말 무시해, 일기야. 아무리 좋은 변화라도 당장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래.
스탬퍼드를 떠나며--- p. 302
이곳에서의 시간이 끝나간다. 한 시대의 끝이다. 내일이면 스탬퍼드를 떠나 헐 시로 간다. 끝없이 여기다 떠들 수도 있고 자주 그래왔지만 지금은 이 말만 할란다. 수없이 많은 축복을 받고 살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들을 갖게 돼서 정말 좋다. 이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어보자. 저 밑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우리들이다. 삶에는 항상 희망이 있다.
에필로그 ? 그 후
누구나 자신을 뚱뚱하고 못생기고 형편없다고 여길 때가 있다. 실제로 그런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분별력이 있다면 그럴 때 이렇게 하자.
첫째,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기
둘째, 자신에게 긍정적인 느낌이 들게 해주는 사람들과 일들을 찾아보기
우리는 비슷하다.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고, 핀이 원하고, 엄마가 원하고, 내 친구들 모두가 원하던 것이었다. 학창 시절 남부럽지 않게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여긴 친구들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가 있다. 첫 번째 일기장이 출간된 후 친구들이 편지를 보내온 덕분에 나는 당시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으로 살았음을 알게 됐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뚱뚱하든 날씬하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다.
흔해빠진 미국 토크 쇼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를 해서 미안한데, 그게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책으로도 출판되고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각색되었으니 다가오는 본 파이어 나이트에는 이 일기들을 그만 불에 태워버려야겠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일기를 공개한 이유는 나 같은 감정을 조금씩은 느껴봤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 p. 316~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