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라가 당황한 얼굴로 엉거주춤 일어서는 사이, 퓨아리스4세는 집무실 구석으로 휘적휘적 걸어가서는 커다란 물동이를 들어올렸다. 플로라에게 돌아온 법황은 그녀의 흰 다리에 물을 부었다. 하인의 행동을 묵묵하게 수행하는 법황을 보며 플로라는 고개를 숙였다.
'황공합니다, 성하. 무례를 용서하옵소서.'
'관두지. 난 인간의 법황이지 식물의 법황은 아니야. 게다가 정원사의 일은 법황의 취미로는 환영받는 편이지. 적어도 부유한 성직자를 파문시켜 재산을 압수하거나 악마도 잘 이해 못할 해괴한 죄목을 만들어내거나 과부 신도들에게 질척한 축복을 내리는 일이나...성직 매매보다는 훨씬 낫잖아.'
--- p.13pp.10-20
'평등은 모든 사람을 똑같에 대해주는 것이 아냐.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 대접해 주는 것이 평등이야....사람은 평등에는 관심이 없네.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따라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주면 사람들은 자기들을 평등하게 대해준다고 좋아하는 거야. 여기서 배신스러운 문제는 자신이 받는 대접에 만족할 줄 아는 고귀한 작자는 별로 없다는 점이지만...' -늙은 해적 두캉가
--- p.179
「이보게, 키 선장...」
「두캉가」
나오려던 말은 두캉가의 입천장쯤에 말라붙었다.
복수가 뽑힐 때 소리가 나던가? 두캉가는 복수가 뽑히는 광경을 많이 보진 못했기에 잘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어둠 너머 저편에 있을 키의 모습을 생각할 때 두캉가는 복수를 손에 쥔 그의 모습 이외엔 떠올릴 수 없었다.
「드래곤의 이빨을 세지 마시오」
메마른 키의 목소리가 어둠을 예리하게 갈라놓았다.
두캉가는 간신히 일어났다. 달빛조차도 제데로 볼 수 없는 두캉가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 어, 생각은 없네. 키. 미안하군.······용납하느니 어쩌느니 했던 건 아무 뜻도 없는 말이었어. 그냥······미안해. 난 ······어, 돌아가겠네」
두캉가는 힘없이 돌아섰다. 그리곤 더 비참해지는 기분을 맛 보아야 했다.
두캉가 선장은 자신의 근시를 저주하면서 멀리 보이는 모닥불을 겨냥하며 힘들게 언덕을 내려갔다.
키는 검푸른 어둠 속에 홀로 서서 말없이 두캉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키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복수를 다시 검집에 꽂아넣으며 몸을 돌렸다.
정말 죽었을까? 키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었기에 키는 눈앞에서 두캉가 선장의 모습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어둠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암흑은 그에겐 너무 익숙했다.
별들이 불타오르는 검푸른 하늘 아래, 풀잎의 그림자가 춤을 추는 새까만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내에게로 느닷없이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쏴아아아······
거친 밤바람은 키의 코트 자락을 사정없이 펄럭거리게 한 다음 다림을 향해 휘몰아쳤다. 마치 키 그 자신의 분노처럼.
---pp.185~186
「그렇더라도······데스필드와 함께 돌아가셔야죠? 신부님 혼자서 어떻게 거기까지 돌아가시겠어요. 그리고 이런 야밤에······도대체 뭔가요? 왜 그렇게 급히······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파킨슨 신부는 목이 메인다는 평범한 말이 이토록 무서운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죽을 사람이 던져오는 따스한 말에 진저리를 쳤다.
당신은 죽습니다. 율리아나 공주.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여 안도하는 바로 이 시점에, 당신을 도와왔다고 믿던 교회의 손에 의해.
그리고 당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은 바로 이 미련한 신부였습니다. 주여!
「이 도시에 있어서는 안 될 사정이 생겼습니다」
율리아나 공주는 오늘 저녁 여러 번 저지른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눈치 채지 못했던 일을 다시 저지르고 말았다.
잠시 경악한 얼굴로 신부의 등을 바라보던 울리아나는 잠시 후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데스필드를 깨울게요」
「공주님」
「혼자서는 못 달아나세요! 시체는 잘 처리했나요? 정당 방위였음을 주장할 증인이 아무도 없어요? 도망치시려면 데스필드와 함께 가셔야 돼요! 아, 참! 도망치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리 엉터리 같은 대사관이라도 이곳은 어쨌든 카밀카르 대사관이니 치외법권 지대예요. 이곳에 계셔야 해요. 폴라 대사님과 함께 사태를 논의해 봐요」
율리아나는 말뿐만 아니라 파킨슨 신부의 팔을 다시 잡아끌었다.
하지만 파킨슨 신부는 약간 거칠다 싶은 동작으로 공주의 손길을 뿌리쳤다.
이 무례에 놀란 율리아나는 그제서야 파킨슨 신부가 울고 있음을 발견했다.
「신부님······?」
파킨슨 신부는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 율리아나 공주를 바라보았다.
신부의 얼굴에 떠오른 비탄과 노여움, 그리고 애절함에 놀란 율리아나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가렸다.
「신······부님? 파킨슨 신부님? 왜······그런 얼굴로 저를?」
눈물을 통해 율리아나를 바라보던 파킨슨 신부의 가슴속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많은 말도 필요없어. 단 세마디면 충분해. 미사에 가지 마시오. 그거면 이 가련한 신의 아이를 구하 수 있어.
저런 눈으로, 마치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신뢰감과 애정으로 널 보는 눈을 보란 말이다.
그러나 파킨슨 신부는 말하지 못했다. 핸솔 추기경이 그를 보내줬기 때문이다.
파킨슨 신부는 그제서야 핸솔 추기경이 자신을 순순히 보내준 사실에 의아해하고 동시에 그 대답도 떠올렸다.
몇 년 전의 짧은 만남뿐이었지만 핸솔 추기경은 그를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pp.219~230
「이보게, 키 선장...」
「두캉가」
나오려던 말은 두캉가의 입천장쯤에 말라붙었다.
복수가 뽑힐 때 소리가 나던가? 두캉가는 복수가 뽑히는 광경을 많이 보진 못했기에 잘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어둠 너머 저편에 있을 키의 모습을 생각할 때 두캉가는 복수를 손에 쥔 그의 모습 이외엔 떠올릴 수 없었다.
「드래곤의 이빨을 세지 마시오」
메마른 키의 목소리가 어둠을 예리하게 갈라놓았다.
두캉가는 간신히 일어났다. 달빛조차도 제데로 볼 수 없는 두캉가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 어, 생각은 없네. 키. 미안하군.······용납하느니 어쩌느니 했던 건 아무 뜻도 없는 말이었어. 그냥······미안해. 난 ······어, 돌아가겠네」
두캉가는 힘없이 돌아섰다. 그리곤 더 비참해지는 기분을 맛 보아야 했다.
두캉가 선장은 자신의 근시를 저주하면서 멀리 보이는 모닥불을 겨냥하며 힘들게 언덕을 내려갔다.
키는 검푸른 어둠 속에 홀로 서서 말없이 두캉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키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복수를 다시 검집에 꽂아넣으며 몸을 돌렸다.
정말 죽었을까? 키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었기에 키는 눈앞에서 두캉가 선장의 모습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어둠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암흑은 그에겐 너무 익숙했다.
별들이 불타오르는 검푸른 하늘 아래, 풀잎의 그림자가 춤을 추는 새까만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내에게로 느닷없이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쏴아아아······
거친 밤바람은 키의 코트 자락을 사정없이 펄럭거리게 한 다음 다림을 향해 휘몰아쳤다. 마치 키 그 자신의 분노처럼.
---pp.185~186
「그렇더라도······데스필드와 함께 돌아가셔야죠? 신부님 혼자서 어떻게 거기까지 돌아가시겠어요. 그리고 이런 야밤에······도대체 뭔가요? 왜 그렇게 급히······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파킨슨 신부는 목이 메인다는 평범한 말이 이토록 무서운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죽을 사람이 던져오는 따스한 말에 진저리를 쳤다.
당신은 죽습니다. 율리아나 공주.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여 안도하는 바로 이 시점에, 당신을 도와왔다고 믿던 교회의 손에 의해.
그리고 당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은 바로 이 미련한 신부였습니다. 주여!
「이 도시에 있어서는 안 될 사정이 생겼습니다」
율리아나 공주는 오늘 저녁 여러 번 저지른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눈치 채지 못했던 일을 다시 저지르고 말았다.
잠시 경악한 얼굴로 신부의 등을 바라보던 울리아나는 잠시 후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데스필드를 깨울게요」
「공주님」
「혼자서는 못 달아나세요! 시체는 잘 처리했나요? 정당 방위였음을 주장할 증인이 아무도 없어요? 도망치시려면 데스필드와 함께 가셔야 돼요! 아, 참! 도망치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리 엉터리 같은 대사관이라도 이곳은 어쨌든 카밀카르 대사관이니 치외법권 지대예요. 이곳에 계셔야 해요. 폴라 대사님과 함께 사태를 논의해 봐요」
율리아나는 말뿐만 아니라 파킨슨 신부의 팔을 다시 잡아끌었다.
하지만 파킨슨 신부는 약간 거칠다 싶은 동작으로 공주의 손길을 뿌리쳤다.
이 무례에 놀란 율리아나는 그제서야 파킨슨 신부가 울고 있음을 발견했다.
「신부님······?」
파킨슨 신부는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 율리아나 공주를 바라보았다.
신부의 얼굴에 떠오른 비탄과 노여움, 그리고 애절함에 놀란 율리아나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가렸다.
「신······부님? 파킨슨 신부님? 왜······그런 얼굴로 저를?」
눈물을 통해 율리아나를 바라보던 파킨슨 신부의 가슴속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많은 말도 필요없어. 단 세마디면 충분해. 미사에 가지 마시오. 그거면 이 가련한 신의 아이를 구하 수 있어.
저런 눈으로, 마치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신뢰감과 애정으로 널 보는 눈을 보란 말이다.
그러나 파킨슨 신부는 말하지 못했다. 핸솔 추기경이 그를 보내줬기 때문이다.
파킨슨 신부는 그제서야 핸솔 추기경이 자신을 순순히 보내준 사실에 의아해하고 동시에 그 대답도 떠올렸다.
몇 년 전의 짧은 만남뿐이었지만 핸솔 추기경은 그를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pp.219~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