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희 (candy@yes24.com)
첫 페이지를 편다. 깊고 깜깜한 밤, 나무와 들판이 펼쳐진 숲이 있다. 여기서 울려 펴지는 웃음 소리. 맨 처음엔 "킥킥킥" 하더니 그 다음엔 "히히히" "호호호" "깔깔깔" "하하하" "껄껄껄" "허허허" 하며 웃음소리는 자꾸 커져만 가는데…….
숲 속 동물들은 하나 둘씩 웃음소리를 따라 길을 나선다. "누가 웃었니?" "누가 웃었어?" 이건 부엉이의 소리. 부엉이는 기다란 망원경을 들고 웃음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나서고, 화장실에서 일보던 늑대, 인형을 들고 자려던 곰도 하던 일을 멈추고 따라 나선다. 이윽고 사슴, 멧돼지, 개구리는 물론 창 밖을 보던 아이까지 합세하지만 아무도 웃음소리의 정체를 모른다. 결국 다같이 숲 속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밤 늦게 웃음을 날리던 범인이 밝혀진다. 범인은 다름 아닌, 커다랗고 둥근 보름달. 달은 동물들을 향해 연못 한 가득 온화하고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누가 웃었니?』는 스토리에 의해 전개되어 독자들에게 일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린이의 말놀이용 그림책에 가까운데, 같은 뜻이라도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우리말 어미의 구조와 특징을 잘 가르쳐준다. 엄마나 아빠 무릎에 앉아 동물들의 성격에 맞추어 "누가 웃었지?" "누가 웃은 걸까?" "누가 웃었어요?" "누가 웃은 거예요?" 하며 함께 읽다 보면 우리말의 말맛을 저절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책을 읽는 사람과 분위기에 따라 그 느낌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또한 『누가 웃었니?』는 그림으로도 섬세하고 볼거리가 많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동물들의 털 하나하나도 섬세한 펜 터치로 입체감을 살렸으며, 짧은 글의 공간감을 그림이 꽉 채워주고 있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진다. 또 각 장면마다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어서 연계되는 복선을 찾는 재미도 있으며, 곰의 인형, 늑대의 두루말이 화장지, 사슴의 스카프 등 소품들의 배치도 아기자기해서 어린이들의 흥미를 더욱 끈다. 동물들 하나하나의 표정을 읽어내는 재미도 어린이의 상상력을 돋운다.
그림책을 구성하고 글을 쓴 사람은 『대설주의보』의 시인 최승호 씨. 김수영 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지성적 판단과 철학적 사유에서부터 출발하는 그만의 시세계를 구축해가는 시인은 어린이들을 위한 예쁜 말놀이 책 한 권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