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로스는 ‘세상의 성자들’이라 불리는 청교도 가운데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로 영적 혁명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간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평화의 사람’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온유의 미덕을 잘 실천했던 그는 생전에도 토머스 굿윈(Thomas Goodwin), 윌리엄 브리지(Will
누구나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행복을 쉽게 얻지는 못한다. 문제는 세상 것들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을 갖기 원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전혀 다르게 말한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1-12).
참된 행복 참된 행복은 오직 하나님만 주실 수 있다. 하나님에게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물건이나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도 삼위일체의 삼위는 온전히 행복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행복하기 원하신다. 우리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선하거나 강하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한복음 1:16).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세상 것들을 별로 갖지 못한 때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만으로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때로 ‘만족’이라고 불린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디모데전서 6:6-9).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3:5). 행복이란 무엇인가?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내면으로부터 오는 행복 첫째,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내면에서 나온다.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불평하면서도 그 불평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겉으로는 행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꿰뚫어보신다. 다윗은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말했다(시편 62:5). 그것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이 같은 신뢰, 그리스도인의 내면에서 나오는 행복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알았다. 하지만 다윗도 낙심할 때가 있었다. 그 역시 이 진리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토로하였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편 42:5). 다윗처럼 우리도 내면에서 시작되어 우리를 완전히 만족하게 하는 행복에 마음을 고정시켜야 한다. 이것은 두터운 옷을 입으면 체온이 올라가 전신이 따뜻해지는 것과 같다. 옷을 입어 몸이 따뜻해지면 그 온기가 지속되듯이 그리스도인의 행복도 그렇게 지속된다.
흔들리지 않는 행복 둘째,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리스도인도 슬퍼한다.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할 때, 그리스도인은 그들과 함께 슬퍼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고난 받는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는 가치 있는 일이다. 예수님도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신다(히브리서 2:18).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문제에 직면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불평하지 않는다. 불평하고 싶을 때는 기도하면서 자신을 컨트롤한다. 또한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순종하며 사랑한다. 자신의 문제에 관해 기도로 토로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여전히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셋째,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타고난 기질에 따른 결과도 아니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초연해서 얻는 결과도 아니다. 비그리스도인도 염려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염려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 이상이다. 비그리스도인도 타고난 기질이나 굳은 결심, 이성을 통해 어느 정도 행복을 누릴 수는 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행복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그렇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비그리스도인은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설명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데서 오는 행복 넷째,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데서 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순종을 강요하시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그늷 때 행복을 느낀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만큼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음을 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장래를 하나님의 계획에 기꺼이 맡긴다. 설령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를지라도 그렇게 한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자신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그들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하신다. 자신의 운명이 자기 손에 있다고 믿는 비그리스도인은 한 번의 실수가 큰 실패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미래를 두려워한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즐거워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여전히 행복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 곤경에 처했을 때 또는 나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되돌아볼 때,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주장하셨다는 사실에서 그들은 행복을 느낀다. 더욱이 어떠한 곤경이 닥쳐도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지속된다. 우리에게는 어떤 종류의 시련에 부딪힐지 결정할 권한이 없다. 예를 들어, 재산을 잃을 준비는 되어 있으나 건강을 잃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권한이 없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그리스도인은 행복하다. 온갖 시련들이 연이어 닥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여전히 행복하다. 문제가 끝날 것 같지 않을 때에도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행복하다. 그로 인해 그들의 삶 전체를 계획하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