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홍콩 신아대학원에서 「혁명문학 논쟁(1928-30) 연구」로 박사학위. 저서로는 『홍콩이라는 문화 공간』, 역서로는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등, 논문으로는 「중국과 홍콩 - 2개 국족 신분의 충돌」「권위주의 체제에서 작가의 세계관 지양문제」 등 다수가 있다.
홍콩을 흔히 만 가지 이미지의 도시라고 한다. 보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이미지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문화적으로 동서양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자본주의 근대화의 긍정적인 측면 그리고 부정적인 측면도 그 만 가지 이미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화려하면서 슬픈 도시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베니스?런던과 같은 경계지역으로 이질적인 사람?문화?교역의 연결점 역할을 하는 도시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홍콩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 ‘중국과 서양이 복잡하게 얽히는 곳, 동양과 서양이 회통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홍콩에는 문화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모습이 혼재하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는 말이다. --- p.4
아침에 세수도 안하고 밖으로 나가 적당한 식당에 들어서면 죽과 국수가 수십 종 있다. 점심에 얌차(飮茶) 식당에 가면 수십 종 심지어는 100가지 이상의 딤섬(點心)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저녁에는 아파트 상가 식당으로 내려가면 돼지?닭?오리 바비큐와 수십 가지의 각종 덮밥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골목 어디에서나 국수와 만두를 먹을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홍콩의 주부들은 한국보다 훨씬 행복하다할 것이다. 해가 뜨기 전인 이른 새벽부터 광둥식 얌차 식당과 홍콩식 차찬청茶餐廳은 사람들로 붐빈다. 홍콩의 대부분 가정은 아침 식사를 거의 밖에서 간단히 해결한다. 홍콩의 주부들은 적어도 아침 식사로부터 해방되어 있다. 홍콩에서 사는 한국주부들의 찬사는 음식에서 시작해서 음식으로 끝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해방은 여성해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여성해방은 주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홍콩은 여성해방의 공간이다. --- pp.7-8
1983년에 베이커(Hugh Baker)는 홍콩에서 홍콩인이라는 독특한 것이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1984년 중국·영국 간 홍콩 반환협정 체결을 앞 둔 시점이었다. 홍콩시민들은 자신들의 신분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그들 자신의 사회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기 공간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과 영국 간 주권 협상이 시작되던 1982년부터 주권이 반환되던 1997년까지 과도기 15년이라는 시간은 홍콩인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관건의 시기이다. --- pp.34-35
홍콩에 신기한 카드가 하나 있다. 팔달통(八達通, 옥토퍼스) 카드가 바로 그것인데, 그것 하나만 있으면 버스?전차?기차?전철?여객선 등 공공 교통수단은 물론 택시까지 탈 수 있고, 햄버거도 먹을 수 있으며 마트?편의점이나 자동판매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수영도 할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다. 또 학교에서 출석 점검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카드 판독기는 교내 도서관?매점 등에도 도입되어 있고, 부모에게는 문자로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이 전송된다.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하면 나오는 현대판 도깨비 방망이이다. 팔달통 카드는 인간의 자유와 상상을 현실화한 것이다. 원시부터 인간이 꿈꾸어 왔던 요술 방망이는 1997년 10월 홍콩에 등장했다. 팔달통 카드는 그만큼 자유를 상징한다. 잔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와 가격을 묻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특히 관광객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 그만큼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자유는 매우 소중하다. 적극적 불간섭 전통의 연속이자 그것의 새로운 창조이다. 홍콩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명성을 떨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