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당신이 나가라고요!”
“여긴 집세도 싸고 전망도 좋아요. 게다가 난 집중이 중요해서 여기 살아야 해요. 내가 7년이나 살았는데, 여기서. 늦게 온 사람이 나가야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긴 한숨 소리를 들은 것인지, 남자는 음정 하나하나를 꼭꼭 눌러가며 으름장을 놓았다.
“눌러살 생각 마요. 내가 책임지고 나가게 할 거니까.”
사실 그녀도 나갈 수 있다면야 나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벽이고 뭐고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사람이 이웃이라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지금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콩쿠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조금의 시간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 남자와의 일을 해결해야 했다. 서로 싸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달래보는 것도 한 방법. 잠깐 고민하던 미셸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상냥하게 들릴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저기 그쪽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방법이 있을 거예요. 합의해서 지내면 되잖아요. 서로 방해하지 말고, 시간을 나눈다든지요. 음, 그래요. 작업은 밤과 낮, 언제가 좋아요? 교대로 해봐요. 그러면….”
그때 벽 너머에서 쪼로록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고민하는데 남자가 말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교대로 정하자고요?”
*
기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와인 잔을 기울였다. 조금 전 그가 낸 쪼로록 소리는 유리잔에 와인을 따르는 소리였다. 벽 너머의 여자가 알리는 없겠지만 사실, 그의 집 화장실은 구석에 있고 또 다른 벽이 한 겹 둘러져 있어 볼일 보는 소리까지 전해질 일은 없었다. 그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면 모를까.
상대방이 여자인 만큼 이런 극약 처방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특효였다. 벽 반대가 조용해진 것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기욤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해낸 자신의 천재성에 건배하며 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갑자기 온 집 안에 굉음 같은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정도 기술도 신경 쓰지 않은, 그야말로 소음. 마시던 와인을 반쯤 뿜은 기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안 돼. 피아노는!”
음악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작정하고 소음을 만들어낼 생각이라면 피아노는 흉기와도 같았다. 설마 상대가 피아노를 치는 사람일 줄이야. 지금까지의 입주자들 중 악기를 다루는 사람은 없었기에 경우의 수로 두지 않았는데, 집이 잘 나가지 않자 집주인과 부동산 측에서 악기 연주를 허용한 모양이었다.
머리를 쥐어뜯는 기욤의 귓가로 비아냥대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피곤하게 굴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합의하죠?”
합의를 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집까지 피아노를 지고 온 걸 보면 꽤나 자주 친다는 것일 텐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욤은 소리쳤다.
“절대 안 해!”
그러자 벽 너머의 여자는 조용히 답했다.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해봐요.”
그렇게 두 사람의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포문을 연 것은 기욤이었다. 그는 출력을 최대로 올린 청소기를 쿵쿵, 빈 벽에 부딪혔다. 9년 전쯤 옛 연인이 사다 준 이래로 바꾸지 않고 쭉 쓰고 있던 것이기에 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평소에는 고물이라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던 그 소음도 지금은 든든한 무기처럼 느껴졌다. 기욤은 버리지 않고 계속 그 물건을 써온 제 자신이 어쩐지 뿌듯했다.
반응을 기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요!”
소리를 지르는 여자에게 기욤도 목소리를 높였다.
“미안하지만 내가 워낙에 깔끔해서 말이죠!”
기욤이 깔끔한 건 사실이었다. 워낙 정리 정돈에 신경을 쓰는 성격 탓에 7년이나 칩거를 했어도 그의 집은 언제나 깨끗했다. 그 자신도 바깥을 훨씬 많이 나다니는 아투스보다 몇 배는 더 단정히 하고 산다고 자부했다.
참고 참던 여자는 피아노로 맞받았다. 그녀는 손가락에 힘을 모아선 있는 힘껏 쾅쾅쾅쾅 피아노를 내리쳤다. 기욤은 살면서 맹세코 그런 쇼팽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최악의 의미로. 지치지도 않는지 분노를 표출하는 듯한 그녀의 피아노 연주는 밤새 이어졌다. 침대 위에서 뒤척거리던 기욤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야이, 피아노 괴물아! 그만 좀 하라고!”
화가 나 베개를 들어 벽에다 집어 던졌지만, 푹신한 베개는 그저 퉁 하고 벽에서 튕겨 나올 뿐이었다. 벽 너머에서는 지지 않고 답이 돌아왔다.
“합의하면 그만할게, 그림 괴물아!”
약 올리는 것 같은 여자의 목소리에 훅 하고 숨을 날린 기욤은 여자가 있을 법한 벽 너머를 뚫어져라 노려보았지만 눈만 아팠다. 그는 성질을 내며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합의라니, 말도 안 돼!’
그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쫓아내면 앞으로 계속 편할 텐데 뭐하러 불편을 참을까. 기욤은 대답 대신 베개를 들어 양 귀를 틀어막았다. 피아노 소리 역시 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울려 퍼졌다.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침대 위의 기욤을 봄철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게 만들었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해 잠을 설친 기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를 갈며 용접 마스크를 썼다.
그가 만드는 구조물 퍼즐, 울티맥스는 쇠봉이며 막대 하나하나를 직접 자르고 갈아 만드는 것인 만큼 소음을 내기로는 피아노만큼이나 최고의 도구였다. 이렇게 허비하기엔 소량으로 구매하는 것이기에 살 때마다 귀찮고 가격도 비싼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기욤은 그렇게 울티맥스에 쓰려고 둔 쇠막대를 얇게 썰어나가기 시작했다.
키이이잉 하는 소리가 온 집에 울려 퍼졌다. 기욤 자신의 귀도 멍멍할 정도였지만, 분명 그녀도 데미지를 입을 것이라 생각하니 끊이지 않고 웃음이 나왔다. 미친 사람처럼 웃으면서 쇠막대를 수십 번 썰고 머리가 멍멍해지고 나서야 기욤은 하던 것을 멈추었다. 그러자 밤새 피아노에 시달렸던 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세상이 조용해졌다.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오랜만의 평화도 건넛방 여자의 목소리에 다시금 무너졌다.
“다 한 거예요, 그림 괴물 씨?”
“아침 먹고 하려고 그런다, 이 피아노 괴물아!”
대꾸를 안 하려고 했지만 기욤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쳤다. 그 집 어딘가에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까. 실없는 생각이지만 그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아무리 벽 너머에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도 이 정도 진상을 떨었으면 보통은 나가떨어질 텐데.
여자는 밤새 피아노를 친 사람이라고는 믿기 여려울 만큼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그럼. 난 오늘 내내 나갔다가 들어올 테니까.”
한동안 물소리가 난다 싶더니, 이어서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곧 나간다니 낮 동안은 조용하겠지 싶어 기욤은 안심이 되었다. 빨리 끝나길 바라며 맛없는 메밀 크래커와 사과를 우적우적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벽 너머에서 문이 열렸다.
그때 문득 어떤 가능성에 생각이 미친 기욤은 당황해서 외쳤다.
“저기, 피아노 괴물… 씨? 드라이어는 끄고…?”
하지만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어이, 이봐요! 저기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