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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362g | 138*200*20mm
ISBN13 9791187514244
ISBN10 1187514241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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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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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는 물건을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명확한 서비스를 파는 회사도 아닙니다.”
“그럼 뭘 파시는데요?”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내가 물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낭만을 팔아보려 합니다.”
“아, 네…….”
그러니까 낭만인지 뭔지를 파는 것도 아니고 팔아보려고 한다고? 그럼 그렇지. 나 같은 놈과 면접을 보려는 회사인데 어디 온전할 리 있겠어.
--- p.13~14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결정이 나도 되는 것인가. 무슨 배드민턴 동호회 야유회를 가는 것도 아니고 엑스포가 아닌가. 물론 엑스포라고 해서 대전 엑스포나 여수 엑스포 같은 국제적인 엑스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기업들은 주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별의별 희한한 엑스포들을 다 개최하곤 했다. 그러나 소규모 엑스포라고 해도 답이 나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업들 협찬부터 전시회 구성과 인원조달, 그리고 전시관 대여에 이르기까지 우리 회사 규모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 p.29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선 그의 어깨 위로 숭고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던가.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돌아선 그의 어깨에서 엿보이는 건 멸종 위기에 몰린 생물종에게서 느껴지는 쓸쓸함이었다. 나는 사장이 존경스러웠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그처럼 온 마음과 몸을 던져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고 싶은 게 있다니. 어떤 목표를 위해 내 삶을 불쏘시개로 완전 연소시키고 싶은 순간적인 욕망에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럼에도 열정은 금세 두려움에 묻혀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사장과 같은 불굴의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이 못 되니까, 그처럼 낭만에 미쳐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럼에도 사장과 함께 끝까지 가보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김 과장도 오 대리도 나와 똑같은 심정 같았다.
--- p.63

“이사님 눈엔 뭐로 보이는데요?”
“잘 물었어. 내 눈엔 다 돈으로 보여. 고객이 아니라 돈. 고객이 다 돈이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가 매부리코를 내 쪽으로 가까이 내밀었다.
“돈이 아니면 또 뭐로 보여?”
“아무것으로도 안 보이는데요.”
나는 반발심을 억누르며 부루퉁히 대답했다. 그는 내 대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하려는 말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강도, 도둑, 좀비. 내 눈엔 한마디로 다 적들로 보여. 무수한 적들.”
--- p.176

나는 돌아누운 미진의 등을 껴안았다. 세월에 헐벗고 상처 받은 등짝. 이제 그녀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사실은 나, 너한테 말하고 싶었나 봐.”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현식이 안치실에 있는 사진, 우리 첫째 아이 돌 사진이야.”
“그럼 그 아이가…….”
“아이 아빠가 현식이야.”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역시 그런 것이었군.
--- p.215

사장이 고갯짓으로 아파트를 가리켰다.
“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나무가 햇빛을 받지 못해 자라질 못합니다. 그래서 나무는 해가 짧게 비치는 순간이나마 최대한 빛을 빨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이파리를 이처럼 넓게 만든 겁니다. 참으로 눈물 나는 노력 아닙니까. 그 우아한 꽃도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늦고 작고 약하게 피었다가 금세 져버리고 맙니다. 나는 그 연약한 꽃잎을 볼 때마다 활짝 펴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이 나무를 볕이 많이 드는 곳으로 옮겨주려는 것입니다.”
어떤 의문 하나가, 달빛이 사금파리를 비추듯 반짝 스쳐갔다. 나는 삽을 드는 대신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사장님, 여기 화단의 다른 나무들은요? 다른 나무들은 어떻게 합니까? 다 똑같이 햇빛을 못 보잖습니까?”
사장이 삽질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하얀 치아가 희미하게 보였다.
“다른 나무들한테 미안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내가 온 세상을 다 구원할 순 없잖습니까? 난 이 목련나무 하나라도 구해야겠습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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