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과 인류학은 같은 진열장에 전시된 시체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전 세계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약탈품과 전리품일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서 구경하는 흑인, 인디언, 혹은 아시아인들의 물건은 시체에서 훔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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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람들은 전율해야 한다. 스펙터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뒤흔들고, 우리를 앞으로 떠밀고, 우리의 확신을 박탈하고, 우리를 불태워야만 한다. 그렇다. 스펙터클은 비난하는 사람들이 뭐라 하건 우리를 불태운다. 그것은 우리를 농락하고, 기만하고, 도취시키며, 우리에게 온갖 형태의 세계를 제공한다. 그리고 때로는 무대가 이 세계보다 더욱 존재감이 크고, 우리의 삶보다 더욱 현존하며, 현실보다 더욱 감동적이며 개연성이 있고, 악몽보다 더욱 무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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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랭크 리치먼드가 예외적인 것, 머나먼 서부 이야기의 한 장(章), 세계의 기념비적인 어떤 것을 예고한다! 쉿. 「신사 숙녀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눈앞에서 세계 최초로 그 유명한 운디드니 전투, 그리고 그 전투의 참전자들을 소개합니다!」 이제 우리는 버펄로 빌의 여행, 낭시를 서둘러 떠났던 일, 비극의 현장을 방문한 것과 그가 생존자들을 고용했던 것, 이 모든 것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멋진 [캐스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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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탄 인디언 몇몇이 버펄로 빌이 가르쳐 준 대로 소리를 지르며 레인저들을 둘러싸고 맴돈다. 입에 손바닥을 부딪치며 우, 우, 우, 하는 소리를 낸다. 그것은 비명 소리를 야만적이며 비인간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전쟁의 비명, 이런 소리는 그레이트플레인스, 캐나다, 아니 그 어떤 곳에서도 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버펄로 빌의 순수한 발명품이다. 그리고 인디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연극적 비명, 광대의 기막힌 발명품을 그들 자신의 불행을 연기해야만 하는 모든 무대에서 끊임없이 외쳐야만 한다는 것을. 그렇다. 그들은 버펄로 빌이 발명한 이 [수작]의 운명을 아직 몰랐고 훗날 서양의 모든 아이들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맴돌며 [인디언의 외침] 소리를 내며 입에 손바닥을 두드리리란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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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기병대를 몰살하려 드는 인디언을 향해 1백 미터를 가로질렀고 화려하게 고삐를 돌려 단숨에 열댓 명의 야만인을 사살했다. 바닥은 시체들로 뒤덮였다. 영웅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기병대가 전열을 추스르니 전황은 돌연 역전되었다. 레인저들은 전투 대형을 갖추고 공격을 가했다. 인디언들은 후퇴했지만 한줌도 되지 않는 그들은 미리 연습한 안무에 따라 차례로 죽어 갔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실제 사건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고 학살은 위대한 승전으로 마무리되기 위해 스릴 넘치는 일련의 액션으로 변모했다.
운디드니 [전투]가 마침내 끝나고 대다수의 인디언은 죽었다. 승리는 압도적이다. 버펄로 빌은 부상자 하나하나를 굽어 살펴보았다. 그 장면은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마침내 그는 거만한 몸짓으로 인디언 전사에게 경의를 표한 후 다음 쇼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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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쇼]는 흔히 주장하듯 잔인하고 소비적인 대중오락의 최종 진화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대중오락의 기원이다. 그것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든 참가자들을 돌이킬 수 없는 기억 상실증에 빠트린다. 운디드니의 생존자들은 영원토록, 밤낮 구별 없이 마일스 장군의 레인저 부대로부터 공포탄을 맞아야만 할 것이다. 대형 조명 기기의 힘을 입어 와일드 웨스트 쇼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조명을 이용한 스펙터클, 최초의 야간 공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스트라스부르, 혹은 일리노이에서 학살의 생존자들은 운디드니 전투의 [소프트] 버전을 되풀이해서 연기할 것이다. 인디언과 제7기병 연대가 영웅적으로 대결했고 미국 군대가 승리하는 버전이다. 그리고 그들은 1년이 넘도록 거의 유럽 전역에서 버펄로 빌이 해석한 역사를 되풀이해서 재연할 것이다.
--- pp.9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