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혜숙 ruru100@yes24.com
36년간의 일본 압제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라 안팎은 기쁨으로 술렁였지만 1945년 8월 이후, 수습해야 할 뒷감당도 적지 않았다. 식민 시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로 재정비하기까지 크고 작은 세력 분쟁이 끊이질 않았고, 사회는 어수선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초라했으며, 먹고 살려고 구걸을 하거나 몸을 팔았다. 허약한 역사는 일제의 잔재를 다 걷어 내기도 전에 또 다른 전쟁을 불러 냈고, 가난과 질병에 전쟁까지 고통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몽실 언니』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에 대한 역사이자 기억이다. 광복 후부터 한국전쟁에 이어지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고단했던 삶을 살아 낸 사람들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저자 자신이 이 같은 시대를 몸소 체험하며 쓴 이야기인 만큼, 『몽실 언니』는 더욱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어린이 문학사에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 받는 『몽실 언니』는 1984년 처음 출간되어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잡지 연재 당시 인민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여 연재 중단까지 되었던 우여곡절을 지닌 소설이다. 이후 인민군과 몽실이가 만나는 일부 내용이 삭제된 채 연재가 재개되었지만 끝내 이 부분이 복원되지 못한 채 책으로 출간된 것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귀국한 몽실이네는 날품팔이 일거리조차 구하지 못해 굶주리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동생 종호는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끝내 죽고, 아버지가 일자리를 구하러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는 살아 남기 위해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간다. “여자도 배워야 한단다. 언문도 모르면 짐승과 다를 바 없어.”라는 부잣집 어머니의 가르침이 더 바람직하리리라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너도 크면 이해하게 될 거야. 여자는 남편과 먹을 것 없이 살아갈 수 없단다.”라며 몽실이를 데리고 고향을 등진 몽실 어머니의 신산한 사정도 이해해야만 한다. 굶어죽는 거지가 넘쳐 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힘든 어수선한 시대에 가난한 시골 아낙네는 살아 남는 것 자체를 버거운 문제로 삼고 살았다.
이렇게 몽실 어머니의 개가로 시작되는 『몽실 언니』는 7살 몽실이의 고난에 찬 삶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보여 준다. 가난과 전쟁은 몽실이에게 각각 두 명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맞아들이게 하고, 배다른 동생들을 키워 내는 소녀 가장의 역할까지 떠 안겨 준다. 불구의 몸이 되어 거지동냥에 식모살이까지 아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절망적인 상황을 겪지만 몽실이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삶을 대처해 나간다.
『몽실 언니』가 절망을 이겨내는 착한 소녀의 이야기로 와 닿기보다는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느껴지는 건 몽실이의 삶을 둘러싼 당시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재현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인 만큼 간결하고, 쉬운 문장 속에는 화려한 수식이나 과장된 표현도 들어 있지 않지만 가장 정직한 눈으로 본 역사의 모습이 있다.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마을을 점령하는 모습, 보리가루로 반죽한 거지빵, 미군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양공주, 버려진 검둥이 아이 등 민간인의 눈에 보이는 전쟁의 흔적들이 역사서보다 실감나게 다가온다. “국군 중에는 나쁜 국군이 있고, 착한 국군이 있지. 그리고 역시 인민군도 나쁜 사람이 있고 착한 사람이 있어.” 라든가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사람으로 만나면 다 착하게 사귈 수 있는 거야” 라는 식으로 이데올로기의 편협한 굴레에서도 한 발 비켜 서 있다.
해방과 전쟁, 분단의 역사를 몸소 겪어온 오늘날 1930, 40년대의 아버지들은 분명 이를 기억하겠지만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자라난 전후 세대에도 이러한 역사가 바로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의 역사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겠지만, 현명하지 못한 역사가 만들어 낸 안타까운 주인공 몽실 언니를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불행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저자 권정생 선생의 말을 의미심장하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