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노자와 헤어지고 나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새는 잘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치며, 들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달리는 들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싯대를 드리워서 낚으며, 날아다니는 새는 주살을 쏘아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다고 하니 나로서는 용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아 전혀 잡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기』「노장신한열전」
공자는 노자를 매우 존경하여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용처럼 실체를 알 수 없고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가 노자를 용이라고 한 일화는『장자』의「천운」에도 나온다.--- 「공자에게 가르침을 준 노자」
노자에 따르면 도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이며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다. 그가 말하는 도는“ 태곳적부터 자연적으로 존재하면서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는 절대적이고 현묘 불가사의한 영원불멸의 허무虛無”이다. 노자가 바라는 세상은 생명과 자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만난다. 무위자연의 도는 흐르는 물 같은 과정에서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고 인위적이고 파괴의 힘을 배척한다. 노자의 가르침은 생명 존중과 일맥상통한다. 생활에 있어서도 극단적이고 과격한 일 대신 사치를 버리고 검소함을 취하도록 주장한다. 노자는 “인간에게 타오르는 탐욕의 불을 끄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면 장차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노자와 무위자연」
노자는 모순된 관계에 있는 쌍방이 상호 의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립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배척하거나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세상의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것은 추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착한 것을 착하다고 알아보는 것은 착하지 않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有와 무無는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도 서로의 관계를 성립시켜 주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서로를 이뤄 주고,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서로를 포함하며, 노래와 소리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도 서로 따른다. 『노자』 제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