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호는 지혁이 얼굴 앞에 뜨거운 숨결을 뱉어 냈다.
“왜 이래? 태수가 좀 이상한 건 사실이잖아. 결국 멜코태수가 완전 멜랑콜릭이 된 거 아냐? 바보도 알겠다. 지금 태수는 정상이 아니야. 혹시 우울증 아닐까? 텔레비전에서도 많이 나오잖아.”
지혁이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뭐? 태수가 우울증이라고? 너, 지금 말 다 했어? 그럼 태수가 정신병 환자란 말이야?”
현호 입에서 아예 화염이 쏟아졌다.
“그럼 아냐? 저게 정상이야? 오죽하면 우리가 멜코라고 불렀겠냐? 너도 그렇게 불렀잖아. 그동안 태수가 우리한테 말을 안 해서 몰랐던 거지. 아니면 우리를 속여 온 건지도!”
지혁이는 한 발 더 물러섰다.
현호는 태수 얼굴에 오른손 주먹을 댔다. 그러나 휘두르지는 않았다.
“닥쳐! 네 생각, 네 판단, 네 말, 다 네 자유야. 하지만 다시는 내 귀에 들리게 하지 마!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말하면 나도 너 안 봐!” --- pp.127-128
엄마가 놀라 묻는다.
아들, 괜찮은 거지? 네 마음은 괜찮은 거지?
너는 아무렇지 않은 거지?
너는 정상이지? 정상이지?
현호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말한다.
엄마, 내 마음에 구멍이 생긴 것 같아요.
우물 같기도 해요.
현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마치 마음의 우물에서 흘러나온 눈물 같다.
안 돼, 아들!
너는 그러면 안 돼!
너만은 그러면 안 돼!
세상 모든 아들의 가슴에 우물이 생겨도 너만은 안 돼!
엄마는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현호야, 미안해…….
아들, 네 마음도 엄마가 보살펴 줄게……. --- pp.160-161
뜨거운 물줄기가 심장을 파고드는 듯해 현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기분은 싫지 않았다. 태수 생각이 났다.
태수 마음속에 있는 커다란 빈 우물 안에 이렇게 뜨거운 물이 콸콸 흘러 들어가면 괜찮아질까?
현호는 몸을 돌려 물줄기에 등을 맡겼다.
이런 병원은 없을까? 마음에 뻥 하고 구멍이 생길 때마다 그 구멍, 그 우물 안에 더운 물을 가득 채워 주는 병원…….
현호는 다시 가슴팍을 물줄기 아래로 향했다.
태수야, 너는 우리보다 훨씬 네 삶에 정직한 건지도 몰라. 지혁이나 나나, 우리 반 아이들이나 모두 마음속 구멍이 없는 것처럼 감추고 사는 건지도 몰라. 그런데 너는 그렇게 감추고 살 만큼 위선적이지 않고, 교묘한 위장도 할 줄 몰라 지금 아픈 걸 거야. 그리고 외치는 거겠지. 내 마음에 우물이 생겼어요, 구멍이 생겼어요, 아파요, 살려 주세요.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말이야. 어떻게 보면 넌 정말 용감한 녀석이야! 용감한 녀석!
--- pp.173-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