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정말 괜찮아. 그것보다 요즘 학교 가는 게 더 속상해. 너도 그렇지?”
“응. 오늘 아침에도 겨우 일어났어.”
“처음에는 다들 친했는데. 이젠 서로 말도 하지 않는 애들이 있어.”
“나도 세은이하고 멀어졌어. 정말 친했는데 말이야.”
4학년에 처음 올라왔던 지난 3월만 하더라도 4학년 2반 25명의 친구가 모두 친했었다. 나는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하늘이와 세은이랑 제일 친했다. 하지만 우리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가게 되면서 친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나는 어른들 일에 친구들이랑 멀어지는 게 너무 속상했다. ……(중략) 나와 하늘이는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어른들은 ‘찬성’과 ‘반대’로 패가 갈렸다. 나는 우리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에 기쁘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다. 좋은 건물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도 컸지만, ‘찬성’과 ‘반대’로 갈린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까지 사이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패가 갈린 어른들은 골목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으르렁거렸다.
어른들보다는 덜했지만, 학교에서도 패가 갈린 상태다. 세은이네 부모님은 재개발에 찬성하는 쪽이고, 하늘이와 우리 부모님은 반대하는 쪽이었다. 우리 반 25명 중 17명이 재개발 지역에 살고 있어, 자연스레 아이들도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다. 나는 이번 일로 가장 친한 친구인 세은이와 사이가 멀어지는 게 속상했다.
“어른들이 왜 싸우는지도 정확히 모르겠고, 우리가 왜 패를 갈라 놀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순 없을까?”
이곳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책에서 보았던 6·25 전쟁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허허벌판엔 천막만이 셀 수도 없이 세워져 있었다.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 사람들이 천막 사이를 오갈 뿐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피난민의 모습이 아닐까?’
“나라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다며?”
“집을 짓고 살아갈 수 있는 터를 제공한 거지. 하지만 집을 짓는 것도, 먹고사는 것도 모두 이 사람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 거야.”
“판잣집에서 살던 사람들이 집 지을 돈이 있겠어?”
“당연히 없지. 아마 생활비조차 없을걸.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 금액보다 2배나 높은 금액으로 여기 사람들에게 땅을 팔았고, 겨우 땅을 산 사람들도 먹고살기 위해 다시 땅을 되파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
마음이 아팠다. 이곳으로 오는 청소차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에는 걱정도 비췄지만 설렘이 더 컸다. 하지만 이곳에서 본 풍경은 일할 공장 등이 갖춰진 새로운 삶의 터전이 아니라 허허벌판의 천막뿐이었다.
나는 “재개발로 새 건물이 들어서도, 값이 너무 올라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다”던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이 사람들도 결국 땅이 있어도 돈이 없어 집을 짓지 못하는 거니, 어쩌면 우리 가족과 비슷한 처지일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희망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마치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제 아침, 아빠와 하늘이의 아빠를 포함한 30여 명의 사람이 남일당 건물 옥상과 그 위에 설치한 망루에서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경비 병력 300여 명을 투입해 해산시키려 하였고, 세입자들은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경찰은 남일당 옥상을 향해 물대포를 쏘았다. 비가 온 듯 거리가 젖어 있었던 이유는 물대포 때문이었다. 철거하려는 경찰과 이에 저항하던 농성자 사이에 실랑이는 길어졌고, 그 과정에서 농성장 옆 상가 건물 가림막에 불이 났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아빠를 포함한 농성자들을 진압하려고 컨테이너에 경찰 특공대를 태워 옥상으로 올려보냈고, 그렇게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희망이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와 같았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테러리스트와 이를 진압하는 특공대의 모습. 하지만 우리 아빠와 하늘이의 아빠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용산 4구역에 대한 재개발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그 긴 시간 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은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해 왔었다.
하지만 서울시와 이곳에 고층 건물과 아파트를 건설할 회사는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엄마, 아빠는 “달걀로 바위 치기 같다”,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던 이야기를 자주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희망이의 말에 따르면 경찰 특공대가 탄 두 번째 컨테이너가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남일당 건물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연히 옥상에 있던 망루에도 불길이 번졌고 큰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서 불에 휩싸인 망루가 무너지고 있었다.
“파랑, 2년 전 일을 생각해 봐. 용산 4구역에서의 일. 재개발로 인해 너와 너의 가족, 하늘이와 세은이가 겪었던 일 말이야. 2035년 용산 4구역은 네가 살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어. 고층 빌딩과 대단지의 아파트, 화려한 공원이 들어선 그곳에선 더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지. 살기 좋아졌다고, 발전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변해 버린 그곳엔 더는 너와 하늘이, 세은이는 없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떠나야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재개발은 용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용산 문제가 터진 이후 인천에서도 200군데가 넘는 곳에서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 등 도시 개발 사업 지구가 예정되며 그곳에 살던 지역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하나같이 고층 아파트를 짓는 일들이었고, 원래 그곳에 살던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살던 삶의 터를 떠나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렇듯 재개발 문제는 희망이와 함께 봤던 1970년대의 경기도 광주 대단지에서부터 2000년대의 내가 사는 현대까지 계속되는 문제였으며, 현재도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살기 좋은 도시,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래된 것들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짓는 게 필요하잖아.”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 그것만으로 살기 좋은 도시, 보다 나은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럼?”
“네 말대로 재개발도 필요해.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진행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초고층 아파트를 지으려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방식으로 재개발된다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가슴 아픈 일이지만 광주 대단지의 사람들은 물론 용산 4구역의 사람들 모두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의 재개발로 쫓겨나야 했잖아.”
“그렇지. 하지만 네가 말한 대로 더불어 사는 방식의 재개발이 가능할까?”
“파랑아, 너는 재개발이 뭐라고 생각해?”
“음…….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 도시를 깨끗하고 보기 좋게, 사람이 살기 좋게 만드는 것? 아파트 같은 걸 세우는 거지.”
“그럼, 아파트에 살면 행복해질까? 너는 행복해?”
희망이의 말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아무 대답도 할수가 없었다. 용산 4구역을 떠나온 이후 나는 한 번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수많은 시간 같은 곳에 살지만, 그 누구와도 친할 수 없었고, 함께할 수 없었다. 용산 4구역의 친구들과 그곳의 생활이 그리웠다. 아파트 나름의 편리한 생활과 새로운 이웃에 눈이 가지 않았다. 아파트만의 문화와 학교와 학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친구들의 생활에 나를 맞추고 새로운 관계
를 형성할 수도 있었지만, 골목 문화에 익숙한 나는 늘 용산 4구역이 그리웠다.
아파트여서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다. 용산 4구역 주민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강제로 헤어져야 했고, 가족을 잃은 사람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이 집과 가게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재개발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이 아직도 나의 삶에 남아 있다. 그래서 행복을 떠올릴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