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동안 여행을 떠날 때도 배낭 18kg, 작은 배낭 9kg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날 때도 배낭 18kg, 작은 배낭 9kg
어쩔 수 없나 보다. 18kg과 9kg. 합쳐서 27kg.
이것이 내 욕심의 무게.
이 욕심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내 의지도 선택도 아닌
오로지 ‘배낭의 부피’와 ‘짊어지고 걸을 수 있는가?’ 이 두 가지뿐.
“배낭만큼 솔직한 것은 없어. 네 욕심만큼 네가 짊어져야 하거든.”
--- p.21, 〈욕심의 무게〉
빈 방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여행 중이라던 한 가족이 자신들의 방으로 초대해주었다. 그리고 방 안의 침대 네 개 중 하나를 내게 내어주었고 가족의 아버지는 맨바닥에 침낭을 깔았다.
각자의 짐을 대강 풀고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함께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아저씨는 비어라오를 크게 한 잔 들이키면서 이야기했다.
“돈이 많은 아빠는 대체로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은 아빠는 보통 돈이 없지요.”
그리고 이어 말했다.
“저는 시간을 많이 버는 아빠라 이렇게 함께 여행을 하는 중이죠!”
--- p.55, 〈시간을 많이 버는 아빠〉
태국의 한 섬으로 들어가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무슨 이유였을까? 전날 강사님이 항상 지켜본다고 했던 말을 너무 과신했던 것일까? 아니면 오늘따라 귀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 있었던 것일까? 바닷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물고기 떼를 무작정 따라가다 보니 강사도, 같이 배우는 학생들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부유물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젠 위도 아래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칠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참을 헤맸다. 그리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순간 시야가 한 번에 열리며 잃어버린 일행들이 저 멀리 보였다.
몇 달 후,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이야기를 다른 다이버에게 했더니 너무 간단하게 해결책을 던져준다.
“그럴 땐 그냥 숨만 들이마시면 몸이 떠오르잖아.”
그래, 그런 거구나. 숨만 쉬면 되는 거였구나. 꼭 바닷속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도 어쩌면 차분히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을지 모른다. 너무 애쓰거나 고민하기보다.
--- p.133, 〈그럴 땐 그냥〉
남미로 가면서 스페인어 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가이드북 뒤에 나와 있는 ‘필수 스페인어’도 들고 다니기 좋게 복사를 해왔다. 그러나 페루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그 긴 시간 동안에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 동안에도 겨우 1부터 10까지 숫자조차 외우지 못했다.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갑자기 차 문을 열고 강도가 들어온다거나 기사가 강도로 돌변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잔뜩 긴장한 채 차 문을 걸어 잠그고 가방을 품에 꽉 껴안았다.
“아블라 에스빠뇰?(스페인어 할 줄 아니?)”
갑자기 택시기사가 말을 걸었다.
“노 아블라 에스빠뇰.(못해요.)”
그러더니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핸들을 잡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면서 “우노, 도스, 뜨레스!(일, 이, 삼!)”를 외친다. 너무 긴장하고 있던 터라 깜짝 놀란 채 나도 모르게 같이 따라 외친다.
“우노, 도스, 뜨레스!”
겨우 십여 분 강제 아닌 강제로 1부터 10까지 외웠다. 그러더니 함께 달리는 차 번호판을 읽어보란다. 힘겹게 다 읽고 나면 다른 차를 가리킨다. 그리고 난 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힘겹게 읽는다.
곧 터미널에 도착하고 택시에 내렸을 즈음엔 어느새 1에서 10까지뿐이지만 숫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누군가 남미 택시에 대해서 물으면 대답했다.
“가끔은 기사가 강도가 되기도 하고 짐을 실은 채 도망도 가지만 운이 좋다면 스페인어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지!”
--- p.178, 〈택시〉
“토마스, 괜찮다면 이 호스텔에 그림 그려도 될까요?”
“물론! 요즘 벽화가 필요해서 계속 아티스트들 구하고 있었는데! 건물 밖 벽에 그린 벽화도 얼마 전에 이곳 예술가들이 와서 그린 거야. 네가 그려준다면 우리야 환영이지! 작업하는 동안 방값은 걱정하지 마!”
점잖은 얼굴에 살짝 흥분된 표정으로 그는 나를 출입구 쪽으로 데려갔고 걸려 있던 액자를 떼면서 말했다.
“여기에 그림을 그려줬으면 좋겠어.”
그러나 나는 마치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것만큼 수줍게 물었다.
“토마스, 사실, 나 저 화장실이 너무 좋아요. 지금까지 다녔던 호스텔에서 본 화장실 중 최고예요.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이에요. 거기에 그림을 그리면 안 될까요?”
“화장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토마스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지만 나의 화장실 예찬론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틀 동안 화장실에 파묻혀 그곳에 커다란 꽃을 피웠다.
“벽화를 그리고 영어로만 써놓지 말고 한글로도 제목을 써놨으면 좋겠어. 그래야 한국 사람들이 보고 반가워할 테니까!”
언젠가 누군가 이야기했다. 화장실 벽화를 다 그리고 이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능이버섯.삼일공.’이라고 제목을 써놨더니, 아주 적지만 몇 명이 인터넷를 통해 벽화를 잘 봤다는 반가운 인사를 전해주었다. 잘 썼다. 한글!
--- p.223, 〈El Jardin Hostal〉
사진을 찍던 중 뷰파인더 안에서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사진을 마저 찍고 카메라를 내리니 아이가 달려와 보여달라 한다. 손톱보다 작게 찍힌 얼굴을 보고 실망할까봐 다시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 보여줬다. 카메라를 움켜쥔 아이의 손에 민디(헤나)가 낙서처럼 그려져 있어 “민디 그려줄까?”라고 물으니 아이는 좋아라 손을 내밀었다. 함께 있던 세 녀석만 그려주려 했는데 어느덧 동네 꼬마아이들이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아이들에게 민디를 그려주며 “2루피(20원)씩 내야 돼!”라고 장난을 쳤는데 한 꼬마 아이가 어딘가를 뛰어갔다 오더니 “아빠가 돈 줬어요”라며 정말로 5루피(50원)을 내밀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아이의 돈 내민 손을 다시 감싸쥐어 주었다.
몇 명 그려주고 나니, 옆에 앉아 있던 큰 언니도, 사두 할아버지도 민디를 그려달라 손을 내밀었다. 이제 다 됐나 싶었는데 또 다시 꼬마 여섯 명이 쪼르르 달려왔다. 이젠 손에 힘이 빠져서 대강 그려주니 아이들이 금세 알고 뾰로통해지지만 몇 개 더 그려준 그림에 금세 다시 웃었다.
250원, 민디 한 튜브 값은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잠시지만 웃고 떠들기에 충분한 가격.
--- p.349, 〈충분한 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