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좋아야 한다. 지식인을 위한 영화는 안 된다. 줄거리를 따라가기 쉽고, 예측이 가능하고, 아주 단순한 영화라야 한다. 사랑 이야기, 오직 사랑 이야기가 전부인 영화. 맨 앞쪽에 자리를 잡아라.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화면 속으로 빠져들라. 모든 것을 잊어버려라. 끝으로,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짜이고 위대하다고 믿어라. 정말이지 아름답고도 슬프다고 생각하라. 얼마든지 바람을 피울 수도 있다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통속적인 인간이 되고, 감상적이 되라. 완벽하게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보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비판적인 시선을 완전히 버리고, 저 답답한 진지함일랑 일절 접어 두라. 모든 의혹, 모든 의문을 무조건 버려라. ‘순진한’ 관객이 되라. 뻔뻔스럽게, 필사적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질 때, 여주인공이 죽을 때, 살인이나 악 혹은 불륜이 승리할 때, 꿈들이 산산조각 깨질 때, 서로의 가슴들이 미어질 때, 바이올린이 단조로 연주될 때, 타악기 소리가 반향할 때, 그냥 눈물을 흘려라. 뜨거운 닭똥 같은 눈물을. 생각하지도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뜨겁게, 온 힘을 다해서, 하염없이. 절망적이면서도 마음이 놓인다고 느껴라. 이야기에 도취되어 옴짝달싹 할 수 없다고 느끼라. 슬픔에 휩싸여 있다고, 슬픔에 온통 젖은 게 행복하다고 느껴라. 그 나머지 모든 것에는 신경을 꺼라.
냉소와 비정과 비난과 우롱의 시대이니 만큼, 의도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선한 감정들을 실제로 느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런 계산 없이. 심심풀이로. 스스로 때 묻지 않았다고 여기는 이 눈물에서 오는 자랑스러운 나약함 뒤에는 특이한 즐거움이 감춰져 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것,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감성의 방탄벽을 허물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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