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기생충을 더하고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논문을 보자.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여서 비만을 유도했는데, 한 그룹의 쥐한테는 기생충이 분비하는 글리칸(구체적으로는 LNFP III)이란 물질을 같이 줬다. 두 그룹의 쥐 모두에게 비만이 찾아온 건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글리칸을 안 준 쥐에게는 비만으로 인한 당뇨가 찾아왔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았던 반면, 글리칸 투여 쥐들에게서는 당뇨는 물론이고 콜레스테롤 상승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글리칸은 기생충이 숙주 면역을 회피하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로, 염증을 줄여 주는 기능을 한다. 비만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도 염증으로 인해 나타나는데, 기생충이 내는 글리칸이 이 염증을 완화시켜 준다는 거다. --- p.41
열은 잘 떨어지지 않고, 열에 신음하는 그의 팔을 모기들이 신나게 빨아 댄다. 제대군인의 혈액에 있던 암·수 말라리아는 그 모기들한테 건너가고, 모기 안에서는 유성생식이 일어난다. 그 모기가 다른 민간인을 물면 휴전선 근처에도 가지 않은 민간인에게서 말라리아가 생긴 셈인데, 이게 바로 말라리아의 토착화다. 그 이후부터 말라리아는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해마다 1천 명 이상씩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 p.230
스파르가눔은 사람의 장을 뚫고 나가 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주로 가는 곳은 피부다. 피부에 뭔가 튀어나온 게 있는데 그게 매일같이 위치를 바꾼다면, 그리고 그가 최근 뱀을 먹은 적이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스파르가눔이란 기생충이 피부 안에서 움직이는 탓이다. 처음에는 아프지 않지만 스파르가눔이 자라면서 염증을 유발해 점차 통증이 생긴다. 그래도 피부에만 있다면 좋으련만, 스파르가눔은 뇌나 눈, 척추 같은 치명적인 장소로 가기도 한다. 뇌로 가는 경우 위에 언급한 소녀의 경우처럼 어지러움을 유발하거나 간질 발작, 반신불수 등의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뇌수술을 해야 하니 문제다. 기생충 때문에 뇌수술을 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음낭이나 고환으로 가는 경우도 예후는 그리 좋지 않다. 처음에 고환이 커지고 뭔가 튀어나오니 “뱀의 효과가 있구나” 하며 좋아하다가 결국 고환을 제거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 p.162
9시 뉴스 앵커 흉내를 한번 내 본다.
“1미터짜리 벌레가 사람 몸에 살다가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사람을 물로 뛰어들게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1미터짜리 벌레가 몸 안에 있다는 것만 해도 소름이 끼치지만, 물로 뛰어들게 한다는 건 더 엽기적이다. 게다가 이 벌레에 감염된 사람 중 일부는 발목이나 무릎이 구부러져 영구적인 불구가 된다니, 기생충은 대부분 착하다던 그간의 주장이 무색해진다. 이 나쁜 벌레가 바로 그 유명한 ‘메디나충(Dracunculus medinensis, Guinea worm)’이다. 처음 들어 보는데 왜 유명하다고 하느냐고 항의할 분이 계시겠지만, 이 기생충은 성서에도 기록된 몇 안 되는 기생충이다. 기원전 1200년 경, 그러니까 이스라엘인들이 홍해를 건너 ‘엑소더스(exodus, 출애굽)’를 감행한 직후 그들을 괴롭혔던 게 바로 메디나충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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