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우또노미아’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안또니오 네그리(1933∼ )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기 위한 책이다. ‘아우또노미아’라는 말은 이탈리아어 autonomia를 소리 나는 대로 읽은 것이다. 우리말로는 ‘자율’이라는 말에 가장 가깝다. ‘자율’, 이 얼마나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인 말인가? 학창시절 교훈이나 급훈에서 우리는 자주 다분히 명령적인 어투로 우리를 굽어보는 ‘자율’이라는 글자를 대면해야 했다. 두발 자율화, 교복 자율화, 등록금 자율화 등등에서도 이 말이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다중의 투쟁에 대한 대응으로서 나타난 지배의 고삐 늦추기 현상이었지만 어쨌든 ‘자율’이라는 말은 권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용어였다.
이와는 달리, 이 책에서 ‘자율’이라는 말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 다중의 창조적 능동을 표현하는 언어로 사용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를 동력으로 발전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의 언어이자 동시에 다중이 집단적 삶의 내재적 리듬을 찾아가는 추구의 언어로 사용된다. 아우또노미아 운동은 1977년 이탈리아의 거리, 학교, 가정, 공장에서 터져 나와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 운동의 이론적 지도자로 지목되어, 수배된 이후 2003년 5월 자유의 몸이 되기까지 24년에 걸쳐 투옥, 망명, 재수감, 연금의 세월을 보냈던 안또니오 네그리의 삶은 바로 ‘다중의 자율을 향해 등대도 없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것’ 그 자체였다.그는 자유의 몸일 때는 노동자들, 실업자들, 학생들, 여성들과 함께 투쟁했고 망명지에서는 연구와 교육에 몰두했으며 두 번에 걸친 감옥 생활에서는 『야만의 별종』, 『제국』과 같은 불후의 명작을 썼다.일흔 살이 넘은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밑바닥으로부터 탐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다중들이 이 제국의 지배 하에서 어떻게 살며 또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미래가 현재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그의 이러한 삶은 국제적으로 전개된 운동들의 파노라마와 연결되어 있다. 이탈리아 아우또노미아 운동은 이탈리아의 전통적 노동운동과 맑스주의 운동에서 발전해 나왔지만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하게 1968년 혁명의 새로운 힘을 흡수하면서 성장했다. 그것은 1977년에는 생태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 등 새로운 사회운동과 연합하여 이탈리아 사회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79년 4월 정부의 탄압으로 아우또노미아 운동은 지하로 스며들었지만 1980년대에 그것은 이탈리아의 은밀한 공간에서, 그리고 프랑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전통적 사회운동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운동의 혁신을 촉구하는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의 상황에서 다시 사회의 표면으로 솟아오른 자율적 운동들은 이탈리아에서는 ‘사회 센터’ 운동으로 나타났고 멕시코에서는 사빠띠스따 운동으로, 브라질에서는 ‘땅 없는 농민들의 운동’으로, 그리고 온 세계의 사회 각 영역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새로운 사회운동들로 나타났다. 여성, 학생, 생태 등의 운동 외에 동성애자 운동, 독립 미디어 운동, 정보 운동,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반핵 운동, 반전 운동, 주민 운동, 공동체 운동, 빈집점거 운동, 거리를 되찾기 위한 운동 등 나날이 늘어가는 유형의 운동들이 그것이다.
네그리는 자율적 운동들의 이 면면한 흐름을 끊임없이 주목하면서 그 운동의 구성과 재구성의 고비고비마다 운동의 전진을 위한 이론적 개념화를 시도하고 정치적 제안들을 내놓았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자율적 운동들을 1917년 혁명과 구별되는 새롭고 특이한 변혁 운동의 개시로 이해하면서 이탈리아 및 국제적 신좌파 운동 속에서 이탈리아 자율운동의 고유성과 네그리의 아우또노미아 사상의 새로움을 살핀다.
나에게 이 책은 지난 10년간에 걸친 네그리 연구의 중간결산이다. 1997년에 편역서 『이딸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 제1권을 내면서 「자율운동의 역사와 네그리의 정치철학」이라는 주제의 글을 제2권에 싣겠다고 한 나의 약속을 나는 아직 지키지 못했다. 때늦었지만 그 주제는 이 책에서 그 때와는 다른 조건에서 좀더 확장된 방식으로 서술된다. 나는 이 책을 네그리의 삶과 저작을 읽는 길잡이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제국』의 출간으로 안또니오 네그리의 이름은 널리 알려진 편이지만 그의 삶과 실천과 사상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논문 형태로 네그리의 정치사상이나 윤리학을 다룬 글들이 있긴 하지만 단행본 수준의 포괄성을 갖는 연구나 분석은 아직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제국』의 출간 이후에 그의 사상에 관한 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들의 많은 부분은 『제국』에 반대하여 전통적 좌파의 생각을 옹호하기 위한 단편적인 논쟁적 글들이거나 서평들이거나 아니면 『제국』을 옹호하기 위하여 쓰여진 논쟁글들이다. 찬반의 입장을 떠나서 지금까지 네그리에 대해 다룬 글들은 지나치게 정세적인 문제에 치우쳐 있다. 특히 그의 생각에 대한 단호한 반대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글들이면 그럴수록 네그리의 사상에 대한 접근이 단편적이고 정세적이다. 아우또노미아를 핵심으로 하는 네그리의 생각이 1960년대에 제도적 좌파에 대한 대항 속에서 발전한 이탈리아 노동자주의(Operaismo)의 비판적 맑스주의로부터 발원하여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이론, 그리고 조절이론의 영향을 받으면서 1970년대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로 발전하고 1980년대에 푸코, 들뢰즈, 가따리로 대표되는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훨씬 유연하고 심원하게 되었으며 1990년대에 탈식민주의의 영향과 마이클 하트와의 집단작업을 통해 전 지구적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들은 무시된다. 많은 경우에 네그리를 폭력을 선호하는 테러주의자로 혹은 다중들의 연합의 방법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자로 보는 낡은 이미지들이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며 반대로 그가 혁명을 버리고 개량주의로 투항했다는 도덕주의적 사고가 지배한다. 네그리의 『제국』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성격을 파악하고 아래로부터의 대응의 잠재력을 탐구한 정세적 분석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대항-지구화’(‘대항-제국’)이라는 대안적 관점이 ‘친지구화’나 ‘반지구화’라는 관점과 갖는 차이는 지난 40여 년간 좌파 운동 속에서 형성되어온 쟁점의 그물망들 속에서 파악하지 않으면 결코 올바르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 pp. 책 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