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는 자연 상태와 자연인을 묘사하기 위해, 또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의 이행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자연 상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루소는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가설은 상상적이거나 제멋대로가 아니라, “그것이 사물의 본질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것이며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때 논거”(본서 115쪽)가 된다. 즉 루소가 그로부터 추리해서 사회와 사회적 인간과 관련하여 내리는 결론은 확신의 영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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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1부 전체는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 사이의 거리와 단절을 강조한다. 자연인은 사회적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질을 단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리고 자연인은 자신이 사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 그것은 그 자체로 충분하며 안정적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복과 균형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는 불평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인간이 행사하는 일체의 권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어떤 강력한 법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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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류에게 두 종류의 불평등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자연에 의해 확립되고, 나이, 건강, 체력, 정신이나 영혼의 특질에서 차이가 나는 자연적이거나 신체적인 불평등이다. 또 하나는 일종의 합의에 좌우되고, 인간들의 동의에 의해 정해지거나 최소한 허용되는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불평등이다. 이 두 번째 불평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다든가, 더 존경받는다든가, 더 유력하다든가, 혹은 다른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등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쳐가며 누리는 여러 특권들에 의해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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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회의 여러 계층을 지배하고 있는 교육과 생활 방식의 놀라운 다양성을 모두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같은 일을 하는 동물적이고 원시적인 생활과 비교해보면, 사회 상태에서보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 간의 차이가 훨씬 적다는 사실을, 인류의 경우에는 자연적 불평등이 제도의 불평등에 의해 커졌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 p.112
루소의 풍부한 감수성은 그의 작업에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이 사실은 왜 그의 삶이 불화로 점철되었는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데이비드 흄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평생 동안 그는 오직 강렬한 감정만을 느꼈으며, 이 점에서 그의 감수성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즐거움보다는 강렬한 고통의 감정을 느꼈다. 그는 마치 자기가 입고 있는 옷뿐만 아니라 살갗까지 벗겨진 인간 같았으며, 이런 상태에서 거칠고 떠들썩한 사람들과 싸워야만 했다.” 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이렇게 덧붙인다. “그의 성격에 이 같은 요약이야말로 진실과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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