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연속사극이 한국인의 역사 인식에 끼친 가장 큰 폐단은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당쟁에 대한 오해를 유발했다는 점일 것이다. 어느 한때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는 대하드라마 형식의 사극에 등장하는 우리 선조들의 정치하는 모습이란 음모를 꾸미고, 복수하고, 귀양을 가거나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죽는 등 역사에 대한 긍지보다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사학과 맞물려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도록 만든 좋은 주제가 되었다.
--- pp. 145
천고마비라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좋은 계절이니 책이라도 한 자 읽으라는 뜻으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오역이 또 가당치도 않다. 이 말은 본시 秋高馬肥가 맞으며 그 뜻도 전혀 다르다. 이 고사성어는 『한서』<흉노전>과 <조충국전>에 나오는데 그 본 뜻인즉,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때가 되었으니 반드시 적들이 지금쯤은 우리를 쳐들어 올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즉 국방에 더욱 마음을 쓰자.'는 뜻이었다. 그것이 어이없이 책 좀 읽자고 뒤바뀌었는데 중국의 식자들 앞에서 아는 체하는라고 우리 식으로 천고마비의 계절 운운하니 저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수 밖에.
--- pp. 258~259
전좌로 본다면 보천보 사건보다 훨씬 혁혁했던 마에다 부대 섬멸 작전이 북한 역사가들에 의해 더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이 기이한 일이다. 김일성 부대는 1940년 3월 25일 화룡현 홍기하에 있는 마에다 부대를 습격하여 100여명을 사살하고 30여명을 생포했으며, 탄약과 양곡을 노획했다. 이 사건 이후 김일성은 만주 일대에서 신출귀몰한다는 평을 들었다. 이 일련의 공로로 김일성은 소련 정부로부터 적기훈장을 받았다. 이 무렵에 김일성은 김정숙이라는 한 여인을 만난다.
이 당시에 김일성이 거느린 빨치산의 규모는 60 명 정도였다. 이때 마적 대장 김일성은 국경 일대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이 당시의 김일성의 행적은 주간에는 주로 매복, 은닉하고 야간에 활동했으며 주거 공간은 토막이거나 토굴이었다.
--- pp. 241~242
요컨대, 한국의 망국의 책임은 일본 군국주의의 참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자신, 특히 당시의 지배 계급에 있다. 우리가 외세의 침략보다 더 경계할 것은 내부의 식민지주의이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 나라 스스로가 멸망 할 짓을 한 연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國必自伐然後人伐之)는 맹자에게로 돌아가 다시 샹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p.219
오리혀 호남인들 중에는 당시에 중앙 정부에 입신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예컨대 왕건이 평생의 사표로 삼았던 도선국사와 살아서는 상주국이요 죽어서는 태사가 된 최지몽은 영암 출신이고, 왕건의 비이자 2대 혜종의 모후인 장화왕후 오씨는 나주인이었으며, 왕건과 말년을 함께 산 동산원부인과 문성왕후는 승주 태생의 순천 박씨로 견훤의 외손녀들이었으며, 고려의 창업 과정에 왕건을 대신하여 죽은 개국공신 신숭겸은 곡성 사람이었다. 더구나 훈요십조를 받았다는 박술희는 후백제의 당진 사람이었는데 호남 사람을 피하라는 말을 굳이 백제 사람인 그를 불러 전했을 리가 없다.
--- pp.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