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는 참 많은 걸 잃었다. 그때 다시 살 기운도 없이 움츠러 들었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읽어야만 했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책은 꼭 소설과 시가 아니었다. 예술서가 아니었다. 영성책이었다. 더 젊은 날 13년간 시달린 불면증을 떨쳐내는 동안에도, 영세를 받고도 오랜 냉담의 세월 속에서, 죽을 듯이 괴롭고 슬퍼 헤맬 때마다 영성책을 읽고 마음을 다스렸다. 나는 스캇펙 박사, 폴 투르니에, 헨리 나우웬의 글들을 사랑했다. 특히 헨리 나우웬의 글로 시대와 인생, 나 자신을 살피었다. 인생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상처와 상실, 슬픔을 먹고 성장한다. 그 상처, 상실과 슬픔을 통해야만이 자신의 영혼을 깊게 만나게 되더라.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는 않고 컴퓨터와 핸드폰 같은 기계 뒤에 숨어 뭐하는 걸까? 그나마 트위터나 블로그, 인터넷 카페가 있어 다행일까. 우리는 점점 더 무언족無言族이 되어, 혼자 기계와 보내는 시간만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왜 만나지 않나.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살가운 인간의 정이 사라지는 이 시대. 큰 사랑을 꿈꾸며 나는 이 책을 엮었다.
부족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큰 사랑의 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는다. 그 품안에서 원고들을 퇴고하면서 더욱 풍요롭고 큰 안목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 작업이 재생과 치유, 작으나마 인간성 회복의 기운으로서 이 세상에 물안개처럼 젖어들면 좋겠다. .
많이 알기에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게 많고 부족함을 깨달을 뿐이다. 부정적인 마음에 휩싸여 우울해지면 나부터 바꾸려고 죽을 각오로 노력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깊어지고 성큼 자란 나 자신을 느낀다. 참 감사한다. 제대로 잘 살고 사랑하는 법을 탐구하고 성찰하며 쓴 이 책. 인생을 축제로 만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41가지 사랑법을 열과 성의를 다해 세상에 내밀어 본다. 사진과 인용된 시는 나의 시집과 산문집에서 택한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랑은 식탁이나 소파 같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자리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거창한 곳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섬세한 배려다. 우리는 깊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상대가 뭘 원하는지 세심해져야 한다. 언제 가만히 있고 행할지 살피고, 화날 일도 지그시 참고, 미소 짓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받는 법을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 p.36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처럼 나는 그리움 하나에 의지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대상이 있거나 없거나 우리는 마냥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곁에 아무도 없으면 대책 없이 외롭다. 그렇다. 사랑이 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기대고 내가 기댈 만한 따뜻한 사람이 언제나 그립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노래들은 거의 다 사랑노래이다. 그만큼 인생에서 사랑문제가 가장 절실하다. 관계란 끊임없이 깨지고 상처받고 아물고 성숙하는 과정인데, 사랑이 아니면 그 모든 순간들을 견뎌낼 수도, 회복될 수도 없다. --- p.39
문득 어머니께서 하신 말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오래 앓아온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의식불명 1년 반 만에 끝내 일어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쓰러지시기 전, 어머니께서 내게 들려준 말씀이 유언이 되어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암담하고 불안했던 젊은 나날, 나는 고시 공부하듯이 탐구하며 시를 썼다. 정말 공휴일도 없이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면서 작업만 했다. 또한 이혼 후에도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일 중독자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물으셨다.
“만나는 남자 있니?”
“아니, 그냥 반가운 지인들만 있어.”
내 말을 가만히 들으시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일만 하지 말고 사랑을 누려라.”
피로에 젖어 흐린 목소리였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중략) 부끄러움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연애는 해봤지만 얼마나 사랑다운 사랑을 했는지 답을 찾지 못했다. 비로소 내 인생이 얼마나 쓸쓸한지, 얼마나 많이 잃고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를 키우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다. 그날 이후, 어머니의 말씀은 내 마음의 표지판이 되었다. 돌아가신 지 만 2년이 되었어도 그 말은 언제나 가슴을 흔들고, 나를 채찍질한다. --- p.41
춤을 추면서 나는 내 안에 살아 있는 소녀를 느낀다. 삶의 리듬에 눈을 뜨고, 그 리듬에 몸을 맡기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소녀. 그런데 먼 옛날, 춤추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직 그 춤을 잊지 않은 그때 그 소녀들은 몇 명이나 될까……. 나도, 그 시절 나의 친구들도 언제까지나 춤추는 기쁨을, 삶의 리듬을 누렸으면 한다. 자신이 편하게 느끼는 곳 어디서나 춤?기를 바란다.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빠르게, 또한 기쁘게, 열정적으로! 삶이 무거운 날, 집 안에서 나비처럼 가볍게 춤을 추어 보기를. 요리하면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음악에 맞춰 온몸을 흔들어 보기를. 어느새 한바탕 신나는 댄스는 일상을 신명나게 만들고, 잊었던 꿈의 리듬을 살려주리라. --- p.67
인생은 복잡하나,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제일 먼저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가 힘들어하면 곁에 있어주고, 일부러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은 인생을 바꿔주는 최고의 힘이다. --- p.85
인생은 길지 않다. 다투거나 쉽게 헤어지기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누군가의 꽃이 될 시간이. --- p.93
여행으로 집착했던 것들에 거리를 두고 볼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 속에서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는 신비한 체험을 누린다. 살아 숨 쉬는 만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리라. 살결을 느끼고, 옷의 질감을 느끼고, 꽃잎과 잎사귀의 흔들림을 보고, 바람을 느끼리라. 밥알을 씹는 느낌과 흙의 감촉, 비누향기까지 모든 감각을 살려 인생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껴보리라. --- p.98
전화 한 통으로 안부 인사를 전하는 일도 드물어진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렇듯 감사나 안부를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살면서 겪는 고통과 슬픔, 삐걱거리는 관계와 단절, 소외감도 감사하고 안부 인사 전하는 마음을 잊은 데서 오는 것 같다. 이혼한데다가 아이를 외국에 보내놓고 혼자 지내다 보니 누군가 내게 안부 인사를 건네 오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밥 먹었어요?”라는 안부 인사는 늘 가슴 찡하다. 독신자들에게는 더욱 와닿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주변에 혼자 사는 친구가 있다면 전화라도 걸어보자. “밥 먹었니?” 혹은 “지금 뭐해? 밖에 어둠이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에 친구의 가슴은 무척 부드러워질 게다. 심지어 외로워서 버림받은 기분이라면 다정한 안부인사에 그 마음은 깨끗이 사라지겠지. 그리고 “나한테 전화 거는 일, 잊지 마”라고 애교스럽게 대화를 마무리하면, 친구의 하루는 상큼하게 열릴 것이다. --- p.103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라. 시련과 상실은 영혼의 성숙을 위해 필요한 것. 느긋하게 기다리면 좋은 때가 온다. 편안하게 느끼면 편안함을 부른다.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끼면 주변에 사람들이 쉬러 온다. 벚나무 곁으로 사람들이 쉬러 오듯이. --- p.107
누굴 깊이 사랑해도 절대 고독감은 어쩔 수 없다. 그 고요한 시간에 영혼에 숨은 신성한 기운을 헤아려라. 외로울 때 책을 읽어라. 자신의 영혼을 살피고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능력을 키워보라. 사람은 함께 있을 때 자극받고 혼자 있을 때 성장한다. 어떤 사이에서도 느끼고 마는 외로움. 자기 성장에 애쓰면서 그래도 늘 미소가 오가고, 서로가 마주선 길 위에 따뜻한 인사가 꽃처럼 펄펄 내리기를 나는 바란다.
--- p.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