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 날이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 죽을 것이다.
차가운 가을 바다는 눈부신 태양 아래에서도 갖가지 밤 빛깔을 띤다. 어두운 푸른색, 검은색, 갈색……. 수없이 많은 발굽에 차여 끊임없이 바뀌는 모랫바닥 무늬를 바라본다.
검은 바다와 백악 절벽 사이로 난 희뿌연 길을 따라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달린다. 이 해변을 달리는 일은 언제나 안전하지 않지만 특히 오늘, 경주가 벌어지는 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하다. (7쪽)
나한테 세상이란 그런 것이었다. 코널리 가족과 코널리 가족이 아닌 나머지. 물론 디스비 섬에서 나머지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지만. 작년 가을까지는 나, 남동생 핀, 게이브 오빠, 부모님, 이렇게 살았다. 우리 가족은 모두 참 조용했다. 핀은 이것저것 조립했다가 다시 분해하고, 남는 부품은 상자에 고이 넣어 침대 밑에 보관하는 아이였다. 게이브 오빠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오빠는 나보다 여섯 살 많은데, 말할 힘을 아꼈다가 자라는 데 다 썼다. 열세 살에 벌써 180센티미터였다. 아빠는 집에 있을 때면 양철 피리를 불었고, 엄마는 저녁마다 빵과 물고기로 기적을 일으켰다. 엄마가 떠나기 전에는 그게 기적인 줄 몰랐지만. (12~13쪽)
그리고 그 소녀가 있다. 절벽 길 위에 서서 처음 그 애와 회갈색 암말을 내려다봤을 때, 나는 그 애가 여자라는 사실보다 바닷속에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오늘은 끔찍한 둘째 날. 사람들이 죽기 시작하는 날이다. 아무도 파도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저기 그 애가 무릎까지 물이 차는 곳에서 속보한다. 두려움 없이. (119~120쪽)
“그 애는 참가할 수 없소.”
이튼 씨가 말한다.
내 심장이 쿵 떨어진다. 도브! 도브 때문일 것이다. 기회가 있었을 때 그 얼룩말을 가졌어야 했다.
“경주가 시작된 이래로 여자가 참가한 적은 없었소. 올해 들어 그걸 바꿀 수는 없소.”
나는 이튼 씨와 그 주변 남자들을 바라본다. 그 사람들이 서 있는 모양새가 서로 한 가족 같고 동지 같다. 바람을 피해 모여든 한 무리 조랑말처럼. 혹은 자기들을 움직이려는 양치기 개를 주의 깊게 쳐다보는 한 무리 양처럼. 나는 이방인이다. 여자다. (236~237쪽)
헛간 틈새를 들여다보는 길고 검은 얼굴.
그 악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헉하는 소리를 참는다. 한밤중 석탄처럼 새까만 그것은 입술을 말아 올려 무시무시한 웃음을 띤다. 긴 귀를 서로 마주 보게 치켜세운 것이 말보다는 악마처럼 보인다. 상어 알주머니가 떠오른다. 콧구멍은 바닷물을 뱉어내기 위해 길고 가늘게 생겼다. 눈은 검고 번들거린다. 물고기의 눈이다.
그것한테서 아직도 바다 냄새가 난다. 마치 썰물 때 바위에 걸려 남은 바다 생물처럼. 거의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굶주렸다. (278~279쪽)
“프린스!”
션이 소리치는 동시에 모래를 박차고 튀어 나간다.
프린스가 쳐다본다.
뱀처럼 빠르게, 코어의 평평한 이빨이 프린스의 목에 박힌다.
머트가 고삐를 뒤로 홱 당기고, 코어가 뒷발로 일어선다. 구경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진다. 머트와 함께 있던 다른 두 사람이 펄쩍 뛰어 물러서서, 자기를 지켜야 할지 머트를 도와야 할지 갈팡질팡한다. (321~322쪽)
우리는 날아간다.
파도가 밀려오면 발가락이 모래 속에 더 깊이 파묻히듯이, 코어의 살갗이 내 다리에 뜨겁게 달라붙는다. 코어의 심장이 뛸 때 내 심장도 뛰고 코어의 힘이 내 안에 느껴진다. 이것이 그 무섭고도 신비한 이시커의 힘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는 모두 안다, 이시커가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를 현혹하고, 어느새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바닷속에 들어가고. 하지만 션은 코어의 갈기를 붙잡기 위해 나를 누르며 앞으로 몸을 깊이 숙이고, 갈기로 매듭을 만든다. 세 개. 그리고 일곱 개. 다시 세 개. 내 머리카락에 닿는 션의 뺨과 내 몸을 누르는 션의 몸 대신, 나는 션이 하는 행동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366쪽)
“너는 두렵지 않니?”
말의 여신은 나한테 다른 소원을 빌라고 했다. 하지만 소원은 지금 나한테는 실낱처럼 약한 선물일 뿐이다. 소원이 확실한 약속 같았던 지난 여러 해를 기억한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모르겠어, 퍽.”
퍽은 중심을 잃지 않도록 팔을 살짝 풀더니 나한테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키스한다.
퍽이 몸을 떼더니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퍽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제 내가 딛고 선 세상이 낯설다.
“무슨 소원을 빌지 말해 줘. 바다에 무엇을 빌어야 할지 말해 줘.” (433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