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충남 예산의 산골 마을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8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 도서실을 아지트로 삼을 만큼 많은 책을 읽었다. 한 학년에 한두 학급뿐인 작은 초등학교라 월말고사에서 1등을 하고 읍내 백일장에 가서 상을 타 오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1974년, 집에서 10리 거리 되는 사립 재단 중학교에 진학해서 고등학교까지 6년 동안 한 울타리 속 학교생활을 했다. 소설을 쓰겠다고 매달리며, 독서 노트를 만들어 본격적인 문학작품을 탐독하고 습작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충청남도 내 백일장에서 상도 많이 타고 그리스신화와 톨스토이, 괴테, 펄 벅의 작품에 매료되어 밤새운 기억과 수채화 그리는 일이 날로 행복해지던 시점이기도 하다. 1979년 대학 입시 무렵에는 문학의 열병에 빠져 기말고사를 팽개치고 절에 들어가 일주일씩 머물 만큼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문학과 미술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부모님의 반대로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 뒤 1년을 허송세월했다. 집안 사정상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국립 전문대에 진학했다. 가정학과 학생으로서 2년 동안 학보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학보사 기자로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신문을 편집하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그런 중에도 재학 중 교내 소설문학상에 2년 연속 장원으로 뽑혔다. 학보 두 면을 다 차지해 실린 당선작으로 한때나마 화제가 되었는데, 첫해는 단편소설 <시인무대>고 이듬해에는 <동심초>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82년 12월에 도서출판 지경사 편집부에 입사했다. 당시 신생 출판사의 편집부 일원으로 정말 의욕을 가지고 일하며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는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떨치지 못한 신춘문예의 열병을 호되게 앓곤 했다. 결혼 전에, 응모 부문도 소설에서 동화로 바꾸어 <천사와 꽃방망이>라는 작품을 내기도 했다. 1984년, 한국여류시인협회 주관의 백일장에서 <강>이란 시로 우수상을 받았다. 1988년 가을에는 전국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참가했다. 짧은 동화 <샘이와 송이>가 뜻밖에 장원으로 뽑혔다. 같은 해 12월 아동문예 문학상에 <다람쥐와 들꽃>이 2회 추천되어, 동화작가의 길에 입문했다. 그렇게 동화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어미 새가 사랑하는 만큼≫, ≪호수에 별이 내릴 무렵≫, ≪엄마는 나만 미워해≫, ≪개구리야 정말 미안해≫, ≪누가 고슴도치나무에 올라갈까?≫ 등의 작품집을 냈다. 1997년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방정환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