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시각에서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말한다면 사주는 물론, 믿을 수 없다. 지극히 동양적인 전통과 맥락에 자리 잡고 있는 사주에 대해 정도를 뛰어넘는 오해와 편견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논리의 비약과 과학적 근거의 박약이라는 혐의에서 사주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이 시대에 사주를 전폭적으로 믿는다는 건, 그래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사주에 대한 의존은 수그러들지 않는가? 길흉을 점치는 테크닉으로서의 정체성 외에 사주를 영속하게 하는 또 다른 본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의 반영 또는 상징으로서, 또 삶의 드라마를 유형화한 스토리로서 사주가 시대를 견뎌내는 강력한 요소를 갖춘 것은 아닐까? 과연 사주가 그렇게 평가해줄 만한 값진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일까? 사주를 정말 어떻게 볼 것인가? _p.13
그런데 수백 년 전 한 천재가 “사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간!”이라고 선언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연지는 동물 특성에 대한 지식으로 연결되고, 월지는 춥고 따뜻하다는 식으로 기후와 연결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인지적·감각적 특성을 보여주지 않는 일간을 사주의 주인공으로 삼게 되면서 사주 체계는 갑자기 추상화됐다. 그리고 이 같은 추상화는 사주 체계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진입장벽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사주가 전문가의 영역으로 확 끌어올려진 것이다. _p.44
식신은 상관과 마찬가지로 ‘관’을 치는 오행이다. 그러나 상관의 오행과 음양(陰陽)이 반대인 경우를 ‘식신’이라 한다. 예컨대 십이지지 중 해(亥)와 자(子)는 모두 ‘물 수’의 기운을 갖지만 하나는 음이고, 하나는 양이다. 같은 사주 안에서 ‘해’가 상관의 역할을 한다면 ‘자’는 식신이 되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복잡하면 그저 상관과 비슷한 성질의 사주 구성요소가 있다는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사주에서 이런 식신이나 상관의 기운이 많을 경우 외향적이고 말 잘하고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판정을 내린다. 한번 찬찬히 생각해보라. 외향적이고 말 잘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것은 영락없이 연예인의 기질이다. _p.64
점이 던지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라. 점은 고통의 원인을 조목조목 따지지 않는다. 점이 먼저 묻는 것은 “지금 당신은 당신 운명의 스펙트럼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점은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당신 운명의 장기적인 흐름을 한번 느껴보라”고 말할 뿐이다. 운명을 탓하고 운명에 모든 이유를 돌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부침과 곡절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이유를 찾는 대신 합리적이지 않은 사태의 흐름을 조용히 지켜보라는 것이다. _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