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가 삼성전기에 근무했던 2014년에 매주 한 번씩 부서원들에게 보냈던 편지의 일부를 엮은 것입니다.
근무 당시 4개 사업부로 나뉘어 있던 영업팀이 글로벌 마케팅실(이하 ‘글마실’)로 통합되어 1, 2팀으로 분리되었고, 저는 그중 1팀을 맡았습니다. 초기에는 매주 주말 우리 팀의 활동 내용을 경영층에 보고하고, 그 내용을 1팀 전원에게 재전송하여 우리 팀이 일주일간 어떤 활동을 했는지 서로 알게 하자는 생각으로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랬던 것이 하반기에 들어 회사의 상황이 악화되자 활동 내용을 공유하는 걸 넘어서서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위클리 메일(weekly mail)’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한 편씩 메일을 작성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부서원들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 주까지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프롤로그_나는 영업으로 인생을 배웠다」중에서
그날 미팅을 끝내고 “팀장님, 좀 더 강하게 몰아붙이지 그러셨습니까!”라고 말하는 저희 팀 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항상 을의 자리에 앉아봐서 그분들의 입장을 잘 안다네. 이미 질책받을 것을 각오하고 회의장에 들어온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건 너무 잔인한 데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않아. 나는 도리어 이 상황이 서로의 비즈니스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하네.”
(…) 그렇게 품질 문제가 해결되고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해당 부품의 자재 수급 부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 그러자 품질 문제를 일으켰던 그 회사는 다른 업체들의 증량 요청을 전부 거절하고 우리 회사가 요청하는 물량을 최우선으로 완벽히 대응해줬습니다. 그렇게 우리 회사는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을뿐더러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기회까지 잡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1장_마음을 주고받는 비즈니스」중에서
제가 특히 신경을 썼던 것은 간부가 부하 직원을 질책하며 고함을 지른 경우였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 그 간부를 제 방으로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습니다. 간부의 설명을 들어보면 대부분 나름대로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자네가 목표로 했던 것이 그 부하 직원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자 함이었나, 아니면 그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바르게 지도해주기 위함이었나? 나는 물론 후자였을 것으로 믿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다 듣는 자리에서 간부가 그렇게 고함을 지르면 부하 직원이 과연 ‘우리 부장님이 나를 지도해주려고 이러시는구나!’라고 생각할까? 그런 상황에서 부하 직원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는 그저 창피하다 느낄 테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들 보고 있는데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반감이 들지 않을까?
부하 직원을 칭찬할 일이 있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듣는 자리에서 큰소리로 하고, 질책할 때는 회의실로 불러서 단 둘이 앉은 자리에서 말하되 그 경우에도 가능한 한 낮은 목소리로 하게. 만일 자네가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오늘 같은 방식으로 현지 직원을 꾸짖었다면 그 직원은 내일 출근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틀 뒤에는 그 직원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치료가 필요하다’는병원진단서와 함께 회사를 상대로 수백만 달러짜리 고소를 했다는 통보를 변호사로부터 받게 될 걸세.” ---「1장_몸살 나게 출근하고 싶은 회사」중에서
상담에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비롯한 각종 보조도구와 샘플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말’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때 그냥 단순히 전하려는 내용을 그대로 말하기보다 그 내용에 ‘스토리’를 입히면 훨씬 더 큰 호응을 얻을 뿐 아니라 상대방이 오랫동안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관련된 사례들을 몇 가지 소개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사례는 한국산 ‘배’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과일을 선물할 때 거기에 스토리가 덧붙여지면 선물을 받은 사람이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을 때 기쁨이 배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거래선에 배를 선물할 때마다 한국의 배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꼭 덧붙이곤 했습니다.
1992년 한국이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불가피하게 타이완과 단교를 하게 되었을 때, 한국의 단교 통보에 분노한 타이완 정부가 모든 한국 상품의 수입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일하게 예외를 인정했던 상품이 바로 한국산 배였습니다.
그만큼 한국산 배의 맛이 뛰어나다는 점을 알리면서 배를 한 상자씩 선물로 주면 선물을 받는 고객들의 표정이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3장_스토리로 말하는 법」중에서
그가 말한 가격은 우리가 예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낮았기에 도저히 계약을 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제가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그 가격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 회의실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에서 많은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를 빤히 바라보는 본사에서 출장 온 임원의 얼굴에서는 ‘얘가 제 정신인가?’, 기존 거래 가격보다 37퍼센트나 낮은 가격을 던져봤던 거래선의 구매총괄의 얼굴에서는 ‘그래? 정말 이 정도 가격이 가능한 수준이었던 거야?’, 그동안 1년간 11달러에 구매해왔던 거래선의 구매담당자의 얼굴에서는 ‘이 친구가 내 상사 앞에서 아예 나를 자르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
그렇게 그들의 얼굴을 한 번 둘러보며 뜸을 들인 뒤,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제품의 시장가격 수준을 모르실 리 없는 구매총괄께서 8달러를 말씀하실 때는 분명히 완전한 부품을 말씀하시는 건 아닐 테니 내용물이 없는 껍데기만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저희 제품의 껍데기(case)만 사다가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지요?”
순간 상담실 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몇 초간 공기가 전부 빠져나간 듯 진공 같은 정적이 흐른 뒤 거래선의 구매총괄이 천천히 치기 시작한 박수 소리를 따라 상담실 내의 모든 참석자들
이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
“Mr. Yoo! 당신이 이겼습니다!”
---「4장_부드러움이 강인함을 이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