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가 어떤 식으로든 삶의 모범이 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생각해보니 녀석이 ‘잘사는 것’의 비결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며, 마치 사춘기 소년 같은 활력, 용기, 호기심, 장난기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내라.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달력이 몇 장이 넘어갔던 젊은 것이다. 괜찮은 인생철학이다. 물론 소파를 찢어놓거나 세탁실을 난장판을 만드는 부분은 제외하고. --- p.270
개를 키우다보면 벽이 상하기도 하고, 쿠션이 찢어지기도 하며, 카펫이 망가지기도 한다. 다른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개와의 관계에서도 대가가 따른다. 이러한 대가를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였고, 사실 이것은 말리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 만족, 보호, 동반자 역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리에게 들어간 비용과 말리가 망가뜨린 것을 복구하는 비용을 다 합치면 작은 요트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간에서 하루 종일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요트가 과연 몇 척이나 되겠는가? 주인의 무릎 위로 올라가거나 주인의 얼굴을 핥으며 터보건을 타고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 순간을 즐기는 요트가 몇 척이나 되겠는가? --- p.317
늙은 개로부터 배울 점이 몇 가지 있다. 세월이 가며 점점 쇠약해지는 말리의 모습을 보면 삶의 무자비한 유한성을 깨닫게 된다. 제니와 나는 아직 중년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렸고, 우리는 건강했으며, 은퇴할 날도 까마득히 멀었다. 나이 같은 것은 들지 않는다고 우기면서 세월이 우리만 비켜갈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말리는 우리에게 그런 사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말리의 털이 희끗희끗해지고 귀가 안 들리는 데다 온몸이 삐걱대는 모습을 보면 말리,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 p.333
말리는 사람을 좋아했고, 발치에 있는 것을 좋아했고, 매트리스에 턱을 걸친 채 자는 우리 얼굴에 대고 헐떡거리는 것을 좋아했고, 샤워를 하고 있으면 커튼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어 물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고, 이 모든 것을 결코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밤에 제니와 내가 침실로 가려고 하면, 녀석은 안달이 난 것처럼 낑낑거리며 오락가락하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 안 들이고 오르던 계단의 첫 칸에 앞발을 걸치고는 기운을 쥐어짜냈다. --- p.338
말리를 보면 인생이 짧다는 것, 그리고 순간의 기쁨과 놓쳐버린 기회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전성기는 한 번뿐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은 꼭 갈매기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차서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끝없이 헤엄쳐가는 날이 지나면, 물그릇의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굽히기도 힘든 날이 온다. --- p.341
1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는 꼭 붙어 있다. 강아지 시절과 조금 컸을 때의 모습, 찢어진 소파와 매트리스의 모습, 물가에서 미친 듯 목줄을 당기며 나를 끌고 가던 모습, 오디오를 틀어놓고 뒷발로 일어난 녀석과 껴안은 채 춤을 추던 광경 등이 차례로 스쳐갔다. 말리가 삼킨 무수한 물건, 떡이 된 월급 수표, 인간과 개 사이의 따뜻한 교감이 이루어지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말리가 얼마나 충성스럽고 훌륭한 동반자였는지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우여곡절로 가득 찬 긴 여정이었다. --- p.358
나는 녀석이 몇 가지를 알아주었으면 했다. “우리가 항상 너에 대해 무슨 얘길 했는지 알아?” 내가 속삭였다. “골칫덩어리라고? 전혀 아니야. 한순간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 말리.” 말리는 이것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이제까지 말리에게 한 번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말이다. 나는 말리가 죽기 전에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말리, 넌 훌륭한 개야.” --- p.380
말리는 훌륭한 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착한 개라는 말도 듣지 못했다. 밴시--- p.스코틀랜드 전설에 나오는 으스스한 요정_옮긴이)처럼 설치는 데다 황소처럼 기운이 셌다. 말리가 하도 요란스럽게 삶을 즐기는 바람에 녀석이 지나간 곳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같았다. 말리는 내가 아는 개들 중 훈련소에서 쫓겨난 유일한 개다. 말리는 소파를 질겅질겅 씹었고, 방충망을 찢었으며, 침을 질질 흘렸고, 쓰레기통을 엎는 데는 선수였다. 지능으로 말하자면 죽는 날까지 제 꼬리를 물려고 뱅뱅 도는 수준이었다. 마치 개의 역사에서 새 장을 열려고 작심한 개 같았다. --- p.392
우리 말리처럼 멍청한 개로부터도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말리는 매일매일을 끝없는 즐거움으로 채우는 것도 가르쳐주었고, 순간을 즐기는 것도 가르쳐주었으며,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또한 일상의 단순한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숲속의 산책, 첫눈 오는 날, 희미한 겨울 햇빛 속의 낮잠. 나이가 들고 쇠약해지는 과정에서 말리는 어려움 앞에서도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엇보다도 말리는 우정과 헌신, 변함없는 충성심을 가르쳐주었다. --- p.393
말리는 나의 스승이자 길잡이였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개가, 그것도 바보스럽고 천방지축인 말리 같은 개가 사람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충성심, 용기, 헌신, 단순함, 즐거움. 그 밖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도 가르쳐주었다. 개에게는 멋진 차나 큰 집, 명품 옷 같은 것이 필요 없다. 신분을 나타내는 그 어떤 상징도 개에게는 무의미하다. 물에 흠뻑 젖은 막대기 하나면 충분하다. 개는 피부색이나 신념, 계층 등의 겉모습으로 다른 존재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오직 진정한 모습만으로 판단한다. 개는 어떤 사람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교육을 많이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똑똑한지 우둔한지를 가리지 않는다. 개를 진심으로 대하면 개도 진심으로 따를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훨씬 똑똑하고 잘난 인간들은 정작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 p.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