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입니다.
그것은 저의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그 주제에 도저히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이 익살에 의해서만 간신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항상 웃음을 지으면서도 내심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줄타기와도 같은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를 하였습니다.--- p.20~21
무슨 실수인가! 나는 아버님의 노여움을 샀다, 아버님의 복수는 분명히 엄청날 것이다, 지금 당장 무슨 수를 쓰더라도 무마시킬 수는 없을까, 하고 그날 밤 이불 속에서 부들부들 떨며 생각한 끝에 살짝 일어나 응접실로 가서 아버님이 아까 수첩을 넣어 두신 책상 서랍을 열고 수첩을 꺼내어 펼쳐서, 선물 주문이 기입된 곳을 찾아 연필을 핥고는 ‘사자탈’이라고 쓴 다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는 그 사자탈을 전혀 갖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책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님께서 그 사자탈을 저에게 사 주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님의 뜻에 맞추어 아버님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겠다는 일념에서, 심야에 응접실에 숨어들어가는 모험도 불사하였던 것입니다. 25~26
조용한 미소였습니다. 식은땀 서 말, 아니, 지금 생각해도 안절부절못할 지경입니다. 중학교 시절, 그 바보 같은 다케카즈의 “일부러 그랬지?” 하는 말과 함께 지옥으로 굴러떨어졌던 그 당시의 심정 이상이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과 이것 이 두 가지가 제 생애에 있어서 연기에 크게 실패한 기록입니다. 저는 검사에게서 그런 조용한 모멸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10년 형을 언도받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이따금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기소 유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갑기는커녕 비참한 기분으로 검사국 대기실의 벤치에 앉아 넙치가 인수하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p.86~87
뜨끔했습니다. 호리키는 내심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었구나. 나를 단지 자살에 실패하여 살아남은 뻔뻔하고 멍청한 괴물의, 이른바 ‘살아 있는 시체’로 밖에 알아주지 않는구나. 그러면서도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나를 이용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이용하겠다는 그 정도의 ‘친구’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역시 좋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호리키가 저를 그렇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p.134~135
저는 일어나서 일단 무언가 적당한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근처의 약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약국 아주머니는 플래시를 받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고 눈이 둥그레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둥그렇게 뜬 그 눈에는 경악의 기색도 혐오의 기색도 없이, 거의 구제를 바라는 듯한, 사모하는 듯한 기색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아, 이 사람도 분명히 불행한 사람이로구나. 불행한 사람은 남의 불행에도 민감하기 마련이니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문득 그 아주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달려가고 싶은 생각을 억누른 채 여전히 그 아주머니와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의 커다란 눈에서도 눈물이 마구 넘쳐흘렀습니다.
--- 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