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창세기의 “태초”와 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태초,” 즉 요한복음의 태초와 요한일서의 태초의 의미는 모두 동일합니다. 단지 창세기, 요한복음, 요한일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목표와 그 접근방식이 다른 것뿐입니다. 창세기의 목표의 초점은 창조에 관한 것이고, 요한복음의 목표의 초점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것으로, 이 문제에 관해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어원학적인 접근(etymological approach)과 신학적인 접근(theological approach)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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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계의 타락이 제7일 안식일 후에 어느 시점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할 때에 영계의 타락, 즉 천사의 타락은 그에 앞서 이루어졌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정확한 시점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제7일 안식일 후부터 두 세계의 타락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7일 안식일과 인간의 타락이 일어난, 그 사이에 천사의 타락이 있었다고 해야 타당하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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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복은 실패 가능성이 있는 조건하에서 주어진 복이지만, 구속적인 복은 실패 가능성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정적으로 보장되고 선포된 복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칼빈주의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불가항력적 은혜와 유효한 은혜로 중생인(重生人)에게 주어지는 복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중생인은 궁극적으로 다시 타락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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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 난제가 되는 이유는 이 본문이 문학적이며 시적 표현(poetical expression)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에 대하여 메타포(metaphor)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언적 사건과 신약의 예언 성취의 사건과의 관계를 시적인 메타포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해석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다분히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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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칩에 대한 공포심을 먼저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마지막 종말에 짐승이 이 공포심을 이용하여 베리칩을 받도록 해서 자신에게 복종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겠으나 신앙적인 것을 조건으로 강요한다면 단호히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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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성경적인 상급의 개념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우리가 받는 “유업의 상”(골 3:24; 히 11:6; 눅 6:23; 마 5:12; 딤후 4:8; 약 1:12)인 “영생”(eternal life)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행위에 따라서 받는 “보상의 상”(단 12:3; 고전 3:8; 고전 3:12,14; 마 5:46; 마 10:41-42; 눅 6:35; 고전 9:17, 9:18, 9:24-26; 빌 4:1; 살전 2:19; 딤후 2:5; 요이 1:8), 즉 하늘의 기쁨인 지복(reward, that is, the bliss of heaven)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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