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야(雍也)」편에 ‘고불고고재고재(不哉哉)’란 구절이 있다. 고()는 ‘모가 난 술잔’인데 이 구절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이 고() 자를 ‘술잔으로 술을 마시다’란 동사로 봐서, ‘술을 마실까, 마시지 말까 마시자, 마시자!(, 不 哉, 哉!)’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해석은 ‘고()가 고답게 모가 나지 않으면 고라고 하겠는가, 고라고 하겠는가!(不, 哉, 哉!)’이다. 말하자면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일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전은 그 시대의 객관적인 요구와 논자의 주관적인 인식, 관심에 입각해서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논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 사람의 관심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과 필요성에 입각해서 살펴봐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_ 서장, 〈논어를 바라보는 관점〉중에서
생각보다 배움이 먼저
[衛靈公 위령공]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으며 생각해 보았지만 유익함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자왈 “오상종일불식, 종야불침, 이사, 무익. 불여학야.”
* 衛 : 성씨 위, 나라 이름 위, 지킬 위 靈 : 신령 령 嘗 : 일찍이 상 寢 : 잠잘 침
처음 공부를 하는 사람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훌륭한 스승이나 선학(先學)들에게 알맞은 교과과정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기반 위에서 자기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독창적인 세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꽃과 나무는 튼튼한 뿌리에 기반을 둔다.
_【 첫 번째 장 】배우는 즐거움 중에서
진실한 용서
[里仁 이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증삼아! 나의 도는 한 가지 이치로 일관되게 꿰뚫는 것이다.” 하시자 증자께서 “예”하고 대답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무슨 말씀인가” 하고 물으니, 증자께서 대답하셨다. “선생님의 도는 진실한 용서뿐이다.”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자왈 “삼호! 오도일이관지.” 증자왈 “유.” 자출. 문인문왈 “하위야” 증자왈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 貫 : 꿸 관 忠 : 진실할 충 恕 : 용서할 서
공자가 평생 화두로 삼을 만한 말이 ‘서(恕, 용서와 사랑)’라고 한 데 이어, 공자의 학문을 후세에 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증자도 선생님의 도는 ‘진실한 용서’뿐임을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여기서 흔히 충서(忠恕)를 충과 서, 두 가지로 해석하는데, 이것보다는 충을 서를 꾸미는 형용사로 봐서 ‘진실한 용서’로 해석해서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일이관지(一以貫之)’란 말에 합당할 것이다.
예수님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언젠가는 거두리라.”라고 하였고, 《중용》에도 “참된 것은 선을 택해 끝까지 고집하는 것(誠之者, 擇善而固之者也)”이라고 하였다.
_【 다섯 번째 장 】용서하고 사랑하며 중에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