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어린 토마스를 한없이 자랑스러워했다. 어린 나를 자랑스러워할 일은 별로 없었다. 적어도 가족 여행을 갈 때는 그랬다. 어머니가 챙겨 놓은 짐을 아버지가 차 트렁크에 싣고서, 우리 가족은 애틀랜틱시티, 플로리다, 보스턴으로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방향 감각이 둔한 어머니는 주유소에서 얻은 도로 지도를 읽는 데 항상 애를 먹었다. 지도를 접는 것만큼은 훌륭하고 완벽하게 해냈지만.
그래서 지도를 읽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요즘 운전 중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위험하다고들 하는데 사실 웃기는 소리다. 당시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아마 아버지는 버펄로의 우회로에서 길을 찾으면서 동시에 문자로 소설이라도 써서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지도를 적당한 크기로 접어 운전대 위에 걸쳐 놓으면, 아버지는 매초 지도와 정면을 번갈아 보며 미국 땅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토마스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상황은 변했다.
“아빠, 내가 지도 읽을래.” 토마스가 말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그 말을 무시했지만 토마스는 끈질기게 보챘다. 결국, 아버지는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꼬마 녀석이 자부심이라도 느끼게 할 요량으로 지도를 넘겼다. 하지만 토마스는 놀이 따위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글 읽는 법을 배우기 한참 전의 아이들이 책을 펴서 단어를 웅얼거리듯 길잡이 시늉이나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토마스는 지도를 잠깐 보더니 말했다. “90번 도로를 16킬로미터 더 운전하다가 동쪽 22번 도로로 들어가.”
“야, 내가 좀 보자.” 아버지는 지도를 다시 집어들어 운전대 위에 놓고 살펴봤다.
“미치겠군. 이 녀석 말이 맞아.” 아버지가 말했다.
지도 읽기에서만큼은 토마스가 언제나 옳았다.
나는 녀석에게서 지도를 빼앗으려고 했다. 내가 형이니까 길잡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가 꼬맹이 동생 녀석의 말을 따르는 광경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레이몬드!” 아버지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동생 가만두지 못해? 걔가 하게 놔둬. 잘하고 있잖아.”
나는 지원을 요청하듯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너도 잘하는 게 있어. 하지만 저건 토마스에게 맡기렴.”
“내가 잘하는 게 뭔데?”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림을 잘 그리잖니.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림을 그려 주렴. 재미있을 거야.”
이 얼마나 같잖은 위로인가? 우리에게는 카메라가 있었다. 도대체 관광지를 굳이 미술작품으로 그려낼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모욕감을 느낀 나는 여행 중에 가지고 놀려고 들고온 종이, 연필, 안전가위 따위가 담긴 케이스에 손을 넣어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검은색 판지를 꺼내 어머니에게 건넸다.
“칼즈배드 동굴이야.”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칼즈배드 동굴은 전날 우리가 들렀던 관광지였다. “집에 돌아가면 액자에 걸어 놔.”
토마스의 증상이 나타난 것은 우리 가족이 피츠버그 남동쪽으로 차로 한 시간 반 걸리는 남부 펜실베이니아의 어느 리조트에 놀러 갔던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열한 살, 토마스는 아홉 살이었다. 산비탈에 지어진 리조트는 낡고 웅장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리조트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샤이닝]에 나오는 오버룩 호텔과 닮아 있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피가 넘쳐흐른다거나 욕조에 죽은 여자의 시체가 있다거나 꼬마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불쑥 복도에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리조트에는 미니골프장, 수영장, 한밤의 빙고 게임, 오후 네 시 포치에서 먹는 쿠키와 레모네이드 따위가 있었다. 그곳에서 보낸 일주일은 재미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벌어졌다. 토마스가 사전에 계획해 놓은 경로를 아버지가 이탈하려고 했을 때였다.
리조트에서 어머니가 내려와 수영을 하거나 편자 던지기 놀이를 하자고 간청했지만, 토마스는 며칠 동안 지도만 바라보며 연구한 끝에 집에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 북쪽 앨투너를 가로지르는 99번 도로임을 알아냈다. 처음에 우리는 토마스의 말에 따라 99번 도로를 탈 계획이었지만 어머니가 쇼핑을 하기 위해 해리스버그를 거쳐 가자고 해서 동쪽 76번 도로를 타기로 했다. 원래의 경로에서 몇 킬로미터 이탈하는 셈이었다.
“안 돼!” 뒷좌석에서 그 얘기를 들은 토마스가 말했다. “99번 도로로 가야 돼!”
“엄마가 해리스버그에 가자고 하잖아, 토마스. 호들갑 떨지 마.” 아버지가 말했다.
“일주일 동안 계획했단 말이야!” 토마스는 울기 시작했다.
“해리스버그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계획하면 어떻겠니? 그것도 재미있잖아?” 어머니가 제안했다.
“안 돼! 지도대로 가야 돼.” 토마스가 고집을 부렸다.
“조용히 해, 토마스. 우리는 그냥―.”
“안 돼!”
“맙소사. 레이, 게임이든 뭐든 꺼내서 동생하고 놀아줘. [매드립스](문장에 비어있는 단어를 채워넣는 게임) 책 어디 있어?”
하지만 토마스는 급기야 안전벨트를 풀고 좌석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머리를 차창에 찧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야, 너 지금 무슨 짓을―.”
“토마스!”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토마스를 붙들려고 했지만 토마스는 나를 밀쳐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차창에 머리를 찧었다. 유리창에 피가 묻어나왔다.
아버지는 차를 급히 돌려 갓길에 세웠다. 어머니는 조수석에서 뛰쳐나오다가 자갈밭에서 넘어질 뻔했다. 어머니는 뒷문을 열고 토마스를 팔로 감싸 안았다. 토마스의 머리는 온통 멍과 피투성이였다.
“알았어, 알았어, 99번 도로로 갈 거야. 네가 가르쳐준 길로 집에 갈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