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사회운동이라고 할 때 하나의 사회운동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독재하에서의 운동은 절박했던 ‘반독재민주화’라는 공통의 과제를 중심으로 ‘수렴’되고 있었기 때문에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통칭되고 마치 하나의 운동처럼 파악된다. 그러나 독재하에서도 사회운동들은 다양한 차이를 갖는 ‘운동들’로 존재했다. 민주화 과정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공통의 적(敵)’이 사라짐으로써 그 차이가 독립적 정체성으로 분화되고, 과거 독재하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운동이 형성된다. 그리고 하나의 운동 내부에서도 다양한 운동이 분화되어 나타난다. ---p.26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간의 관계(확대하면 시민사회적 이유와 민중적·계급적 이슈 간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확장된다고 저절로 자본주의의 폐단을 관리할 수 있는 것도, 대중의 경제적 삶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며, 그 반대 상황 역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서구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심지어 파시즘 정치체제와도 결합했으며, 박정희 정권하의 한국, 푸틴 정권하의 러시아, 일당체제하의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도 발전했다. 논리적으로 보면 시장 계약의 당사자들이 서로 대등한 계약 주체로서 자발적으로 계약할 수 있는 조건만 정치체제에 의해 충족된다면 시장경제는 어떤 정치체제와도 공존할 수 있어 보인다. 이런 계약 자유의 조건이 자본주의 시장체제가 필요로 하는 민주화의 최소 영역이다. ---p.146
한국에서 경제개혁 시민운동의 원류는 재벌체제의 전근대성에 주목하면서 현실 총수의 개인적 거세에 주로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재벌체제에서 총수의 권력이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 체제(권력관계)적 결과라면 개인 총수를 제거하는 것은 재벌체제의 개혁과는 관련이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투기펀드 소버린(Sovereign)이 SK를 지배하게 되면 소버린이 총수의 권력(소유에 기초하지 않거나 소유 지분을 초과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될 뿐이다. 따라서 ‘시장의 왜곡’을 해소하는 것으로는 결코 재벌체제를 개혁할 수 없다. 한편 총수의 제거에 수반하는 민간 부문의 권력 공백을 메우는 길도 찾기 어렵다. ---p.164
‘포섭의 정치’와 관련한 연대의 실패 사례로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들 수 있다. 애초에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통해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 원내 진출을 시도했는데 이는 ‘정치적 중립성’을 천명한 낙천낙선운동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둔 것이다. 그런데 낙천낙선운동이 시민사회의 엄청난 호응을 얻자 민주노총은 뒤늦게 총선시민연대의 참여를 희망했지만 시민연대 측은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영향력의 정치’와 관련된 연대의 실패 사례는 서구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적대적 관계를 들 수 있다. 이는 전자가 물질주의적 가치(임금 인상, 경제적 권익)를 추구하는 데 비해, 후자는 탈물질적 가치(환경파괴적 성장의 거부, 생태적 지속가능성)를 추구하는 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p.184
노동운동의 경우, 1990년대 초반까지는 노동 내부의 다양한 조직 및 여타 사회운동과의 긴밀한 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운동적 조합주의’의 특성을 띠었으나, 199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이런 특징이 현저하게 약화된다(은수미, 2005: 144~145).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사안별 연계는 여전히 활발하지만 공통적인 가치나 신념은커녕 공통적인 해석틀 및 그에 기초한 장기적인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 내부에서도 계층 분화, 양극화라는 구조적 요인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방식의 행위, 예컨대 비정규직에 대한 배제와 파당 형성이 뚜렷해지고 있다. 2000년 총선에서 시민연대와 민중연대의 분화, 2001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 등은 사회운동에서 연대주의적 전통의 약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된다. ---p.202
풀뿌리운동은 공동육아, 방과 후 학교, 생협, 조례제정운동, 주민자치센터 등 다양한 운동을 포함한다. 함께하는시민행동과 시민자치정책센터가 중심이 된 ‘지역비전 만들기 기획위원회’가 아홉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만든 ‘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한 비전 만들기 참고자료집’(하승수 엮음, 2005)에 따르면 풀뿌리운동의 영역은 ‘시민자치’, ‘여성’, ‘복지’, ‘교육·청소년·아동’, ‘보육·방과 후 보육’, ‘문화’, ‘환경’, ‘도시계획’ 8개 영역으로, 사실상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풀뿌리운동이 ‘지역’보다 ‘주체 형성’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운동의 영역은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고, 또한 주민들의 삶의 문제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풀뿌리운동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p.225
사이버풀뿌리운동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서 사이버 공론장은 좀 더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 외국에서의 사이버 공론장이 오프라인 영역이 단순히 확대된 것이라면, 한국에서의 사이버 공론장은 한국 시민사회의 역사적 성격 때문에 정보화 사회의 특성이 미성숙된 근대를 발전시키는 독특한 형태를 보여준다. 즉, 한국의 사이버 공론장에서는 연고주의에 기반을 둔 기존의 오프라인 결사체와는 다른 좀 더 완전한 형태의 자발적 결사체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생략) 사이버 공론장과 사이버 자발적 결사체는 익명성에 기반을 둔 대등한 쌍방향성이라는 인터넷 그 자체의 성격으로 인해 처음부터 대등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최초의 대중적 공간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모두가 대등한 조건에서 만나는 사이버상의 각종 동호회는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이상, 즉 ‘비판적·합리적 토론’과 ‘보편적 참여’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고, 다양한 클럽, 카페를 통해 한국에서 좀 더 완전한 형태의 근대적인 합리적 주체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pp.232~234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결과 실용으로 포장된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이념적 지향은 서로 다르더라도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것 자체가 여전히 ‘진보성’을 갖기 때문에 현재 여성 정치인과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여성정치세력화운동의 다양한 주체들은 ‘연대’의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여전히 소수인 상황에서 질적인 담보를 함께 가져가는 방식의 여성정치세력화는 무엇인지, 권위적이지 않고 성 평등한 정치권력을 구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여성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p.281
자기 지배의 실현인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대중이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정치다. 여기에서 정치는 단지 엘리트 민주주의를 따라 선거에 참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다양한 방식의 직간접적인 참여를 통해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말하고 스스로 해소·극복하려는 목적의식적 실천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선거, 정당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자기 지배의 실현이라는 민주주의 본래의 의미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직접 참여를 부정할 그 어떤 근거도 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제도정치의 수준에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것, 그리고 주민자치센터의 활동에 간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이다. 이것은 정치, 따라서 근대 이후 그것의 핵심인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pp.307~308
과거사위원회들의 활동이 성공하느냐 여부는 민주화운동세력의 현실 참여를 통한 정부 운영과 민주주의 실행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험대라 볼 수 있다.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있지만, 제도화된 정부기구를 통하여 민주화운동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독재정권을 붕괴시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지 모른다. 제도화는 민주화의 요구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타협과 굴절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며, 그러한 것을 감수하면서도 궁극적인 목표를 상실하지 않을 때 실질적인 민주화가 달성될 수 있다. 그러한 목표를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킬 수 있는 훈련된 정치가, 새로운 정치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책임 있고 능력 있는 관료, 자제력이 있으면서도 강력한 동원력을 가진 시민사회가 있어야 한다. ---p.430
현재 뉴라이트는 태동기일 뿐으로, 뉴라이트가 추구하는 정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뉴라이트가 ‘새로운 운동’이기보다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모습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정해구, 2006). 그것은 우선 뉴라이트가 낡은 우파로서 올드라이트와의 차별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냈어야 함에도, 주로 진보·민주진영의 의제를 공격하면서―특히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과 무능함을 집중 공격하면서―반사이익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하려는 데 있다.
---p.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