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와 한국사회 모두에서 고전적 의미의 가사노동이나 가족구성원을 돌보는 역할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이러한 돌봄의 역할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치가 부여되는 노동이 아니었다. 따라서 여성주의자들은 돌봄노동(care work)의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화폐단위로 그 노동의 비용을 계산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또한 돌봄 그 자체는 여성의 부드러움과 감수성, 타인의 욕구를 감지하는 탁월한 능력 등으로 인하여 칭송되어야 하는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런데 여성취업의 증가, 가족구조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과거처럼 돌봄노동을 기꺼이(또는 비자발적으로나마) 받아들이고자 하는 여성이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봄은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또는 국가정책을 통해 제공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도적 뒷받침이 갖춰지고 있다.
노동의 여성화, 즉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발해진 것이 기본 축으로 존재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교육기회의 증대와 더불어 많은 여성이 전문직, 사무직, 관리직으로 진출하는 특성이 우선적으로 돌봄노동의 ‘공식화’, 돌봄의 ‘노동화’를 초래하게 된다. 여성이 직장, 사회로 진출하고 난 뒤에 남겨진 가족과 가정은 누가 유지하고 돌볼 것인가? 이런 추세에 맞물려 돌봄을 수행해야 하는 여성들이 진출한 뒤의 빈자리를 메울 또 다른 ‘노동력’이 필요하게 된다. 글로벌 사회에서 이 자리는 저임금 서비스직으로서 돌봄을 담당하는 여성노동인구가 대체하고 있다.
돌봄노동을 둘러싼 현실은 그 과정이나 결과물 자체가 아닌 돌봄노동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 자체에 불평등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가치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동의 질이나 의미와 모순되는 ‘저임금’이 억압된 노동의 왜곡을 강화하는 것이다. 즉, 돌봄이 노동과 맞물리기 전까지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이에 대해 사회가 좀 더 고차원적으로 의미부여했던 측면이 노동과 맞물리면서 일치하지 않고 있는 데서 이에 대한 가치평가의 어려움과 저임금이 자리하고 있어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의 부인이 되고 어머니가 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속에서 사적 세계는 저평가되는 상태로 남아 있다. 특정한 노동, 즉 양육 혹은 사적인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는 계속되고 있다. 급료의 수준에서 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화장실 청소하는 것과 대체로 맞먹는다(파레냐스, 2009: 127 재인용).
이렇듯 사회적 돌봄서비스는 국가의 직간접적 개입을 필요로 하는 공적인 서비스이며, 이에 대한 수요가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서비스 수요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인가는 복지국가의 중요한 정책적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증가하는 돌봄서비스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돌봄서비스의 공급주체들을 어떻게 다원화하고 이러한 주체들 간 관계를 어떠한 방향으로 형성시킬 것인가가 많은 국가의 주요 정책과제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되고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이때 돌봄을 해주는 중요한 인력은 요양보호사가 될 것이다. 요양보호사가 ‘국가공인인증 파출부’가 아니라 환자를 ‘관리해주는 전문인’으로서 인식되어 제대로 된 돌봄을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자부심’을 갖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에서 돌봄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사회구성원 모두가 언젠가는 돌봄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행복하고 존중받는 관계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이주여성 가사노동자는 ‘진짜 내 가족인 것처럼, 진짜 내 아이인 것처럼, 진짜 내 부모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강제당하고,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감정을 관리한다. 고용주 가족의 특정한 요구에 부응해서 ‘웃는 얼굴’로 다양한 가사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이주여성의 일상생활에서 무조건적으로 인내하고 참아내는 자기조절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조선족 이모’라고 불리는 조선족 입주도우미는 1980년대 후반부터 ‘방문취업제’라는 이원화된 한국의 이주노동정책을 통해 한국사회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대다수 이주여성은 불안정한 고용, 저임금, 임시적이고 유동적인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조선족 여성이 모성적이고 가사에 능숙하다’, ‘조선족 여성은 한국여성과 마찬가지로 자녀교육에 대한 열성이 강하다’ 등의 ‘한민족 동질성’은 조선족 여성에게 가사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유용한 노동자원이 되기도 하지만, 한국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저임금의 강도 높은 돌봄노동을 수행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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