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모델은 1987년 시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개발독재체제가 무너지고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개발국가가 후퇴함에 따라 붕괴했다. 박정희 모델은 민주화와 글로벌화 시대에 지속 불가능했다. 박정희 모델은 긍정적 및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산업정책과 금융 통제는 긍정적 유산이고, 독재, 성장지상주의, 재벌지배체제, 중앙집권-수도권 일극 발전체제는 부정적 유산이다. 민주화 이후 독재는 청산되었으나, 성장지상주의와 재벌지배체제, 수도권 일극 발전체제는 여전하거나 더욱 강화되었다. 산업정책과 금융 통제는 점차 폐기되었다. --- p.6
박정희 모델의 긍정적 유산인 산업정책과 금융 통제를 새로운 형태로 계승하고 부정적 유산인 성장지상주의, 재벌지배체제, 중앙집권-수도권 일극 발전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정립하기 위한 보수와 진보 간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이 합의에 기초한 새로운 한국 모델의 근간은 유지되어야 한다. 보수 정부에서는 그 발전 모델의 보수 버전이, 진보 정부에서는 그 진보 버전이 출현하더라도 말이다. --- p.7
일본 모델, 한국 모델, 중국 모델 등 동아시아 3국 모델의 차이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5부문 간의 제도적 위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국가 부문의 상대적 우위는 중국, 한국, 일본 순으로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개발국가의 강도가 중국, 한국, 일본 순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발국가의 강도의 차이는 정치체제에서 권위주의의 정도가 중국, 한국, 일본 순으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산업정책의 강도 면에서 일본의 집중적 조정보다는 한국의 유도적 계획이, 한국의 유도적 계획보다는 중국의 명령적 계획이 더 높은 강도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산업정책 주체의 권력 면에서 볼 때 중국의 국가발전계획위원회, 한국의 경제기획원, 일본의 통상산업성 순서로 권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 p.33
한국형 제3의 길의 비전은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① ‘자율·연대·생태’의 가치 추구, ② ‘분권·혁신·통합’ 정책의 지향, ③ 공정한 시장경제의 실현, ④ 국가지상주의와 시장근본주의의 배격, ⑤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합의의 추구, ⑥ 공정한 글로벌화 추구, ⑦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의 실현, ⑧ 혁신주도 동반성장체제의 구축, ⑨ 학습복지와 복지 공동체 구현. --- p.60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한다는 것은 곧 시장의 완전성을 믿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려는 시장근본주의를 배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제3의 길은 국가만능을 믿고 모든 것을 국가의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는 국가지상주의도 배척한다. ‘국가냐 시장이냐’는 종래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 설정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원 배분과 사회경제 운영에서 국가·시장·시민사회 간의 적절한 균형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래서 시장주도도 아니고 정부주도도 아니며, 민관 파트너십에 기초한 거버넌스를 지향한다. 이러한 거버넌스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하고 사회적 합의를 추구함으로써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고 사회통합을 실현할 수 있다. 이러한 시장경제는 곧 조정시장경제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제3의 길은 조정시장경제를 지향한다. --- p.61
한국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이 실현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실업급여 수준을 현행 실직 전 평균임금 50% 수준에서 70% 수준으로 높이고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현행 3~8개월에서 최소 6개월, 최장 1년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 그리고 GDP 대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 비율을 현재의 0.4% 수준에서 적어도 OECD 평균 수준인 0.6%까지 높여야 한다. 이와 같이 보다 관대한 실업급여와 보다 높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비율을 가능하게 할 정부 지출의 증가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 증세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직간접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과세 증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시장 유연안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간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회적 합의의 핵심은 관대한 사회복지와 높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 비율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증세 방안을 합의하는 것이다. --- p.134
한국 경제의 양대 문제인 저성장과 양극화는 개발국가의 해체와 신자유주의로의 재편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글로벌화와 지식기반경제 시대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한국도 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추구하고 있는 제3의 길의 합리적 핵심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사회민주주의의 경험이 없다는 점이 다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의 경우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제3의 길이지만, 한국의 경우 개발국가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제3의 길이 된다. --- p.157
중앙집권-수도권 집중체제를 지방분권-지역다극 발전체제로 개혁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을 비수도권으로 분산하는 지방분권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방에 충분한 결정권, 세원, 인재가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전국 각 경제권역별로 다극 발전체제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역권역별로 지속가능한 성장 잠재력이 형성되어야 지역경제가 발전하고 지역 일자리가 창출되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골고루 높아질 수 있다. --- p.190
지방정부의 직접적 국정 참여를 위한 채널인 지역대표형 상원을 도입하여 국회를 양원제로 운영한다. 한국형 상원 모델을 개발하여 헌법에 반영한다. 하나의 대안은 광역 지방정부 단위로 동일한 일정 수의 상원의원을 선출하여 지역대표형 상원을 구성하는 것이다. 상원은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 지역 갈등 해소와 지역 간 협력에 관한 입법을 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이러한 상원은 현재의 국회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정치적 비대칭성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상원은 통일을 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 즉, 통일한국에서 북한 지역 지방정부들의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함으로써 남북한의 정치적 통합에 기여할 것이다. 제2공화국에서의 민의원과 참의원 양원제 운영 선례도 있기 때문에 그 경험을 참고하여 한국형 지역대표형 상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 p.237
자본주의에서 공공성을 높이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다. 왜냐하면 공공성이 약화되면 자본주의의 불안정성과 불공평성이 증대해 자본주의가 경제적·사회적·생태적으로 지속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p.285